사우디아라비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 중재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그 속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달에는 우크라이나전 개전 3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과 러시아 당국자들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만나 협상을 벌였고, 11일(현지 시간)부터는 미국과 우크라이나 간 휴전 논의를 위한 고위급 대화가 열린다.
CNN은 11일(현지 시간)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이른바 '글로벌 파워 브로커'를 꿈꾸고 있다고 분석했다. 단순한 '석유 부자' 국가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성공적으로 국제 분쟁을 중재하는 평화 유지군이 되겠다는 야심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각각 맺어 온 친분을 바탕으로 양국 간 조정 역할을 하고 있다.
사우디 정치평론가 알리 시하비는 "국가 지도자가 트럼프와 푸틴 양측 모두와 이처럼 좋은 개인적 관계를 맺은 곳은 없다"며 "사우디아라비아는 중요한 행사를 개최함으로써 사우디의 소프트파워를 지역적으로나 세계적으로나 드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함마드 왕세자와 사우디에 상당한 호의를 베풀어왔다. 2017년 1기 행정부 때와 2025년 2기 행정부 취임 후 첫 해외방문지로 사우디를 택했다. 2018년 워싱턴포스트(WP) 칼럼니스트 자말 까슈끄지 피살 사건이 사우디의 소행임이 드러나며 무함마드 왕세자가 국제적으로 따돌림을 당했을 때에도 그의 편을 들었다.
사우디도 적극적으로 보답해왔다. 2020년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에서 패배한 후에도 긴밀한 사업 관계를 유지하며 그의 친인척이 회장을 맡고 있는 회사에 20억 달러를 투자하고 사우디에 '트럼프 타워'를 건설할 계획을 발표했다. 이로 인해 사우디와 무함마드 왕세자가 트럼프 대통령을 후보 시절부터 '관리'해왔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푸틴 대통령과도 사이가 돈독하다. 푸틴 대통령 역시 까슈끄지 피살 이후 무함마드 왕세자를 지지하며 사우디의 국제적 고립을 완화시켰다. 사우디는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후에도 러시아와 협력을 이어왔으며, 같은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원유 증산을 요청했을 때도 러시아와 긴밀히 협의해 이를 거부하기도 했다. 사우디가 석유를 증산해 가격이 떨어지면 원자재 수출로 돈을 버는 러시아 경제에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지난 10일(현지 시간)에는 제다에 도착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무함마드 왕세자가 따뜻하게 맞이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워싱턴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공개적으로 질책을 받고 빈 손으로 돌아온지 일주일 만이었다.
분석가들은 무함마드 왕세자의 이같은 '중재자' 행보가 양극화가 심화되는 글로벌 정세에서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특사인 스티브 위트코프는 "무함마드 왕세자가 지난달 러시아에 구금된 미국인 포로 석방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아울러 사우디는 아랍에미리트와 함께 우크라이나, 러시아 간 포로 교환 등 여러 협상에서도 성과를 거뒀다. 바레인 국제전략 연구소의 중동 정책 수석 연구원 하산 알하산은 "전쟁 종식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목표를 함께 추진하는 만큼 사우디는 앞으로도 미국의 호의를 쌓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우크라니아 전쟁 평화협상 외에도 사우디가 미국과 이란 사이의 핵 협상도 중재하려고 한다는 소식도 나오고 있다.
/김민경 기자 mk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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