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세션(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발 경기 침체)’ 우려로 국내 투자자들이 일주일 새 미국 채권을 4000억 원 넘게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가 빠르게 고조되면서 대표적인 안전 자산인 채권으로 투자 수요가 쏠리고 있단 분석이다. 업계에선 늘어나는 해외 국채 투자 수요에 맞춰 해외 국채 펀드 투자 한도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2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달 4일부터 전날까지 미국 국채 순매수 규모는 약 2억 8091만 달러(4080억 원)로 집계됐다. 지난 1월 20일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국내 투자자들의 채권 순매수는 느는 추세다. 지난달 채권 순매수액은 12억 7641만 달러(1조 8507억 원)로 1월(1조 224억 원) 대비 8300억 원 가량 늘었다. 이날 기준 채권 보관 금액도 지난 달 말 136억 8000만 달러(약 19조 8360억 원)에서 138억 달러(20조 1344억 원)로 증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위협 수위를 높이면서 글로벌 경기 불안정성이 커지자 위험 회피 심리가 커지고 있단 분석이다. 실제로 전날 뉴욕증시 우량주 중심의 다우존스 지수는 올 들어 1110.74 포인트 하락한 4만 1433.48에 거래를 마쳤다. 기술주 위주의 나스닥 지수도 트럼프 취임 이후 약 11.75% 하락한 2320.68에 장을 마감했다.
반면 미국 장기채 금리는 올 들어 하락세를 걷고 있다. 채권 가격은 금리와 반대로 움직인다. 금리가 떨어지면 채권 가격은 그만큼 상승했다는 의미다. 미 국채 30년물 금리는 지난 1월 14일 4.977%에서 전날 4.596%로 떨어졌다. 당분간 금리 인하가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한 만큼 현재 시점이 미국 장기 채권을 매수할 적기라고 보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안전 자산에 대한 수요는 채권형 ETF로도 번지고 있다. 국내 상장된 미국 장기국채 투자 ETF 중 최대 규모인 ‘ACE 미국30년국채액티브(H)’는 지난달 순자산액 2조 원을 돌파했다. 한 달 수익률도 2.83%로 나타났다. 일본 엔화로 미 국채에 투자하는 상품도 덩달아 호조를 보이고 있다. 미 장기 국채 금리가 하락하고 엔화 가치가 상승하면 수익률이 오르는 ‘RISE 미국30년국채엔화노출(합성H)’의 최근 한 달 수익률은 5.84%에 달한다.
연일 늘어나는 해외 국채 투자 수요에 현행 30%인 OECD 회원국 국채 투자한도를 늘려야 한다는 업계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OECD 회원국과 중국에서 발행한 국채는 펀드 자산의 30%까지만 담을 수 있게 돼 있다. 때문에 운용사들은 차선책으로 재간접형 설정 등으로 해외 국채 100% 익스포져를 맞추고 있는 실정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들어 국내 투자자들 사이 미 국채 ETF가 큰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데 익스포져를 맞추기 위해 레버리지 상품을 담은 상품도 있다”며 “이 경우 변동성 잠식 때문에 정확하게 추적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미 장기 국채에 대한 과도한 롱 베팅은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명실 iM증권 연구원은 “지금까지는 정책 불안감과 구두 발언이 금리 하락을 주도했다”며 “확실한 경기 지표 부진과 연준의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 선회 등의 추가 조건이 부합하지 않는다면 과도한 베팅은 자제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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