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소고기 업계가 한국의 ‘30개월령 이상 수입 금지 조치’를 재논의해달라고 행정부에 요구하면서 국내 한우 농가에 비상이 걸렸다. 한국은 검역 규정을 통해 미국산 소고기 월령을 제한하고 있는데 미국이 이런 규정을 ‘비관세장벽’으로 지목해 향후 관세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사회적 혼란을 초래했던 광우병 사태가 다시 한 번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12일 농림축산식품부 등 관계부처에 따르면 미국은 다음 달 2일 상호 관세 부과를 앞두고 한국의 농축산 비관세장벽 완화를 잇따라 압박하고 있다. 상호 관세는 각국의 대미 관세율과 비관세장벽 등을 전반적으로 검토해 부과하는 관세다. 한국의 소고기 30개월 월령 제한과 같은 규제를 트집 잡아 공세 강도를 높일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미국 전국소고기협회(NCBA)는 11일(현지 시간)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제출한 의견서를 통해 우리나라의 소고기 검역 제도를 불공정 무역 관행으로 지목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27일 워싱턴DC를 찾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번식가능한 유전자변형농산물(Living Modified Organism·LMO)’ 감자 수입 개방을 비공식적으로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이 미국산 소고기 수입 검역 규정을 완화할 경우 한우 농가에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한우 업계는 현재도 한우 사육 마릿수 증가에 따른 한우 가격 하락과 사료비 증가로 인해 수년째 적자를 보고 있다. 통계청 축산물 생산비 조사에 따르면 한우 평균 단가 하락과 생산비 증가로 인해 마리당 순수익이 2021년 29만 2000원 흑자에서 2022년 68만 9000원 적자로 돌아섰다. 2023년에는 마리당 142만 원 적자를 기록해 그 폭이 더 확대됐으며 지난해에도 마리당 213만 원가량 적자가 난 것으로 추산된다.
한우 농가가 소를 키울수록 손해를 보고 있는 가운데 미국산 소고기 수입량이 늘어나면 농가의 피해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관세 철폐와 함께 월령 제한까지 사라지면 저렴한 미국산 소고기가 국내 시장에 밀려들어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따라 미국산 소고기에 매기는 관세는 매년 단계적으로 줄어 1년 뒤인 2026년 최종적으로 철폐된다. 한우자조금관리위원회의 ‘쇠고기 완전 개방화 시대 대응 한우 산업 정책방안’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2026년 미국산 수입 소고기가 무관세화될 경우 한우 농가의 생산자잉여 감소액은 4481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 바 있다. 미국의 압박이 이어지자 한우협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한우 농가는 4년째 적자에 허덕이며 한계점에 내몰려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미국산 소고기 관세 철폐에 이어 비관세장벽인 개월령까지 철폐가 된다면 더 이상 한우 농가가 설 자리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수입 소고기 월령 제한의 배경에 광우병 논란이 있었던 만큼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거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03년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서 미국산 소고기의 한국 수출이 중단된 바 있다. 이후 한미 정부가 장기간의 협상 끝에 광우병이 발생한 적 없는 30개월 미만 소고기만 수입하는 것으로 2008년 양국이 합의했다. 한우협회는 “우리나라에서 광우병은 큰 논란이며 매우 민감한 문제”라며 “미국의 광우병은 총 7건이나 발생했으며 최근 2023년 5월에도 1건 발생한 바 있다”고 했다. 한 축산 업계 관계자는 “광우병이 발생한 적 없는 30개월 미만 소고기만 수입하기로 하면서 국내 소비자가 안심하고 미국산 소고기를 소비할 수 있던 것”이라며 “위생과 검역 조치가 완화되면 미국산 소고기에 대한 소비자의 불안감이 다시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비관세 장벽 공세는 한우뿐만이 아니다. 미국영화협회(MPA)는 한국의 외국 콘텐츠에 대한 스크린쿼터제와 망사용료 부과가 미국 기업의 추가 부담을 가져올 수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북미블루베리협의회(NABC)도 미국 블루베리에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한국은 미국의 블루베리 2위 수출국인데 여기서 시장을 더 키워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생명공학 업계에서도 한국 정부의 약값 정책에 대해 지적했다. 생명공학혁신기구(BIO)는 한국 정부의 ‘가격통제’로 인해 미국 제약사들이 개발한 혁신적인 제품이 충분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낮은 가격에 판매된다는 입장이다. 전미자동차노조(UAW)도 미국의 자동차 관세를 높이라고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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