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을 잃고 표류하던 인텔이 립부 탄 전 케이던스 최고경영자(CEO)를 새 CEO로 임명했다. 탄 CEO는 인텔 이사회를 갈등 끝에 떠났던 인물로 반도체 설계·파운드리 분야 베테랑으로 꼽힌다. 분할 매각까지 논의되던 인텔이 새 선장을 맞으며 ‘정상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다.
12일(현지 시간) 인텔은 신임 CEO로 립부 탄을 선임한다고 밝혔다. 탄 CEO는 오는 18일 취임하게 된다. 탄 CEO는 “인텔은 강력하고 차별화된 컴퓨팅 플랫폼, 방대한 설치 기반, 견고한 제조 기반을 보유하고 있다”며 “이 상징적인 회사가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주주가치를 창출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재편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본다”고 밝혔다.
인텔은 지난해 12월 팻 겔싱어 CEO가 갑작스럽게 은퇴하며 임시 CEO 체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말은 ‘은퇴’지만 주가 하락과 실적 압박에도 파운드리 복귀를 이어가려던 겔싱어 CEO가 회사 분할 매각 등을 고려하던 이사회와 충돌해 사퇴하게 됐다는 설이 주류다.
탄 CEO는 겔싱어 CEO가 2022년 파운드리 복귀를 도울 적입자로 영입했던 인사지만 지난해 8월 이사회와 논쟁을 벌인 후 회사를 떠났었다. 당시 탄 CEO는 인텔의 보수적인 관료 문화와 뒤쳐진 인공지능(AI) 전략을 수술하려 했으나 내부 반발을 이기지 못했다고 한다. 사실상 이사회가 ‘백기’를 들고 탄 CEO가 옳았음을 인정한 셈이다.
반도체업계는 탄 CEO 복귀에 따른 인텔의 향방에 주목하고 있다. 탄 CEO가 3대 반도체 설계 자동화(EDA) 기업 중 하나인 케이던스를 2009년부터 2021년까지 이끌었던 인물임을 떠올려 볼 때 인텔 파운드리 사업에는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케이던스 소프트웨어는 TSMC·삼성전자 등 파운드리는 물론 엔비디아·AMD 등 설계 전문 팹리스까지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가 인텔의 파운드리 복귀를 도울 적임자로 꼽혀온 이유다. 실제 인텔 이사회는 탄 CEO를 영입하며 “기술 산업 전문성, 제품 및 파운드리 생태계 전반에 걸친 긴밀한 관계, 주주 가치 창출에 대한 입증된 실적을 갖춘 뛰어난 리더”라고 강조했다.
다만 탄 CEO가 겔싱어 CEO와도 갈등을 빚었던 만큼 기존 파운드리 전략에도 수정이 가해질 가능성이 높다. 탄 CEO는 인텔 이사회에서 현장 엔지니어가 아닌 중간 관리자 중심 감원과 AI 중심 사업 효율화를 강조했었다고 한다. 또한 취임과 함께 ‘주주가치 중심 사업 재편’을 언급한 만큼 현 이사회가 추진하는 사업부 매각에는 일부 동조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테크계 한 관계자는 “전임 겔싱어 CEO는 인텔 ‘성골’이기에 사업 축소와 경쟁사 투자 유치 등에 부정적이었겠지만 탄 CEO는 태생이 외부인”이라며 “'내부 정치'와 무관한 구조조정과 함께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TSMC에게 요구 중인 인텔 파운드리 지분 매입 등이 그대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탄 CEO는 이날 직원들에게 보낸 취임사를 통해 “인텔에게는 회사를 재창조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믿지만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며 “내 리더십 하에 인텔은 엔지니어링 중심 회사로서 최고의 제품을 개발하고, 고객의 말을 주의 깊게 경청하고, 약속을 책임지고 신뢰를 구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하여 “세계적인 제품 기업으로서의 지위를 회복하고 세계적 파운드리로서의 입지를 확립하겠다”고 밝혔다.
시장은 환호 중이다. 이날 뉴욕증시 정규장에서 4.55% 상승 마감했던 인텔 주가는 탄 CEO 선임 소식이 전해진 후 시간외 거래에서 11% 이상 급등했다. 탄 CEO가 이사회에서 사임했던 지난해 8월 22일 주가가 6.1% 급락했던 점과 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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