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민감국가’ 명단에 한국을 지정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정부의 늑장 대응에 대한 비판론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미국 에너지부·국무부 등 관계기관과 적극 협의해 나가겠다는 입장이지만 향후 원자력·인공지능(AI) 등 과학기술 협력 기회가 대폭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15일 미국 에너지부(DOE) 등에 따르면 한국은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CL)’에 신규로 포함됐다. 민감국가로 지정되면 원자력·AI 등 미국의 국가 안보와 관련한 기술에 대한 공동 연구와 정보 공유가 제한된다. 목록에 대한 효력 발효는 다음 달 15일이다. 정부는 한국이 민감국가 목록에 포함됐다는 내용까지 뒤늦게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지난 1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회의에서 미국 정부의 한국 SCL 분류 움직임에 대해 “비공식 제보로 받은 것을 가지고 상황을 파악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로부터 한국 SCL 포함 후 관련한 공식적인 내용을 공유 받지 못했고 이에 대한 대처도 제대로 하지 못한 셈이다. 외교부는 뒤늦게야 “사안을 엄중히 보고 있으며 미국 정부 관계기관과 긴밀하게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외교 전문가들은 탄핵정국 등으로 한미 소통도 위기 상황에 이르렀다고 지적한다. 미국 정부가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에 대한 사전 통보와 제대로 된 배경 설명도 듣지 못하면서 정보 공유 신뢰관계가 심각하게 무너졌다는 것이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비상계엄 해제 이후인 12월 5일 필립 골드버그 당시 주한미국대사와 만나 상황을 설명하는 등 진땀을 뺀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가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갑작스러운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와 관련 주한 미국 대사관도 제대로 된 내용을 전달받지 못해 심각한 불쾌감을 표현한 것으로 안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한국 정부가 많은 영역에서 사실상 ‘패싱’ 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가 한국을 민감국가에 포함하면서 한미 간 첨단기술 협력에도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된다. 미국 에너지부는 산하 17개 국립연구소를 통해 AI·원자력·양자 등 각종 첨단과학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한국은 주요 협력 대상국 중 하나이다. 하지만 민감국가에 지정되면서 향후 원자력 분야 등에서 인력 교류와 공동 연구가 제한될 가능성이 커졌다. 한국의 수출형 연구용 원자로(연구로) 개발, 파이로프로세싱(사용 후 핵연료 재활용 기술) 등 주요 원자력 기술 분야에서도 타격이 클 것으로 우려된다.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외교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 중”이라며 말을 아끼고 있다. 국내 에너지업계의 한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무역, 에너지, 국방 등 모든 영역이 거래의 대상”이라며 “원자력과 관련해 갑자기 어떤 제한 조치를 내릴 수 있고 이로 인해 정부는 무언가를 내줘야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