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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속통신 넘어 정보가 순간이동…양자인터넷 시대 온다 [김윤수의 퀀텀점프]

과학·IT 기자가 들려주는 양자역학

장거리 양자전송을 표현한 그림. 사진 제공=ETRI




반도체 회로는 전기 신호가 없는 상태를 0, 있는 상태를 1로 인식해 디지털(2진법) 정보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런 회로가 장착된 계산기에 ‘1+3’을 입력한다고 해보죠. 회로는 1과 3을 각각 2진법 표현인 001과 011이라는 전기 신호로 인식한 후 덧셈 규칙에 맞게 전기 흐름을 이리저리 제어할 겁니다. 그 결과 전기 신호 100, 즉 숫자 4를 출력하겠죠. 이때 회로는 전기 신호를 단순히 ‘1’ ‘0’ ‘0’과 같은 3개의 숫자 나열이 아니라 100(=4)이라는 세자릿수를 가진 하나의 수로 인식하고 계산합니다. 각 자릿수(비트)가 하나의 회로 안에서 서로 연동된다는 거죠.

양자컴퓨터 역시 계산 단위인 큐비트 입자들이 서로 연동되는 현상을 응용합니다. 그래야 20큐비트, 100큐비트, 1000큐비트 성능을 가졌다는 말이 단지 큐비트 입자 20개, 100개, 1000개가 있다는 것을 넘어 이것들이 함께 대규모 연산을 할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질 수 있을 테니까요. 나중에는 양자컴퓨터들끼리 정보를 주고받는 양자인터넷 시대도 열릴 텐데요. 이 역시 서로 멀리 떨어진 양자컴퓨터들의 큐비트 입자들 간 원격 연동이 필수입니다. 입자들의 상태가 서로 연동되는 현상을 ‘양자얽힘’이라고 합니다. 양자중첩과 함께 양자컴퓨터 구현의 핵심 원리입니다.

두 입자의 양자얽힘을 표현한 그림. 사진 제공=CERN


양자얽힘을 이해하기 위해 한가지 사고실험을 소개해보겠습니다. 검은색과 흰색의 상태를 50%씩 중첩해 가진 입자가 있다고 합시다. 물론 색깔은 이해를 돕기 위한 비유일 뿐 실제 입자가 가질 수 있는 상태는 스핀이나 운동량 따위가 될 겁니다. 어쨌든 이 입자를 관측하면 양자중첩 상태가 무너지면서 검은색이나 흰색 둘 중 하나로 확인되겠죠. 이런 입자가 2개 있어서 둘을 관측하면 50%라는 확률의 정의상 ‘사이놓게’ 하나는 검은색, 다른 하나는 흰색으로 확인될 겁니다.

마찬가지로 입자 2개가 있는데 이번에는 둘중 하나만 관측하면 어떻게 될까요. 관측된 입자가 검은색으로 확인됐다면 나머지 입자는 관측하지 않아도 흰색이 될 것이 뻔합니다. 그래야 두 입자가 50%라는 확률 분포를 충족할 테니까요. 이는 특정 입자에 대한 관측이 다른 입자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마치 서로 파트너의 상태를 아는 것마냥 ‘쟤가 검은색이 되면 나는 흰색, 반대로 쟤가 흰색이 되면 나는 검은색을 취한다’는 식의 두 입자 간 상호작용이 존재한다는 말로도 들립니다. 오늘날엔 ‘두 입자가 얽혀있다’ 내지는 ‘두 입자가 양자얽힘 관계다’라고 표현되죠.

양자얽힘을 표현한 그림. 사진 제공=ETRI


양자얽힘 개념을 처음 꺼낸 이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입니다. 그는 광전효과 실험으로 양자역학 발전에 기여했으면서도 양자중첩이라는 양자역학의 핵심 이론을 부정했다고 했죠. 위의 사고실험은 그가 양자중첩을 반박하기 위해 제안한 ‘EPR 역설’을 각색한 것입니다. 두 입자를 화성이나 안드로메다 은하처럼 극단적으로 먼 거리에 서로 떨어뜨려놓는다고 해도 한 입자가 검은색으로 관측되면 우주 저편에 있는 나머지 하나는 볼 것도 없이 흰색이 되는 관계는 성립해야 하는데 과연 광속보다 빠른 상호작용이 가능하겠냐는 거죠. 아인슈타인은 양자얽힘을 ‘기묘한 원격 작용(spooky action at a distance)’이라고 비꼬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납득하지 못한 양자중첩과 마찬가지로 양자얽힘도 실험을 통해 밝혀진 현실에 존재하는 현상입니다. 양자얽힘은 단지 존재하는 것을 넘어 ‘양자전송(quantum teleportation)’, 직역하면 ‘양자 순간이동’이라는 새로운 정보전달, 궁극적으로는 양자인터넷 기술로 연구되고 있습니다. 위의 사고실험과 비슷하게 양자얽힘 관계의 두 입자를 서로 떨어뜨려놓은 후 하나의 정보가 0으로 결정되면 반대편 입자는 자동으로 1로 결정된다는 점을 응용하는 거죠. 이는 입자가 직접 1이라는 정보를 품고 전선이나 광섬유를 따라 움직이지 않고도 해당 정보를 반대편에 즉각 전달하는 효과입니다.



물론 두 입자, 나아가 여러 입자를 양자얽힘 관계로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역시 양자중첩처럼 외부 영향에 아주 민감한 양자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사고실험처럼 지구에 있는 입자와 안드로메다 은하에 있는 입자를 서로 얽히는 일은 아직까지는 더더욱 말이 안 되는 일이죠. 대신 근거리를 시작으로 현재 100㎞ 정도의 거리까지 양자얽힘 기반의 양자전송이 실험적으로 가능해졌습니다. 죽을 때까지 양자역학을 인정하지 않았던 아인슈타인이 사실은 양자역학의 발전에 상당한 공헌을 했다는 것은 과학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연합뉴스


양자전송 실험의 대표주자는 전편들에서 종종 언급한 안톤 차일링거입니다. 그는 1997년 ‘양자전송 실험(Experimental quantum teleportation)’이라는 간결한 제목의 논문을 통해 광자가 가진 편광이라는 상태를 다른 광자로 전송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공로로 역시 양자얽힘 실험에 기여한 알랭 아스페, 존 클라우저와 함께 2022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죠. 당시 노벨위원회는 차일링거에 대해 “양자역학이 옳다는 것을 증명했고 양자컴퓨터, 양자네트워크, 양자암호통신의 길을 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여담으로 차일링거의 제자이자 양자전송 실험에 참여했던 중국 물리학자 판젠웨이는 현재 자국에서 세계 최초 양자통신위성 ‘묵자호’와 구글급 성능의 양자칩 ‘주총즈 3.0’ 개발을 포함한 핵심 연구를 이끌고 있습니다.

2022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안톤 차일링거. 사진 제공=노벨위원회


국내에서도 최근 고무적인 성과가 있었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12일 국가 양자정책 컨트롤타워인 양자전략위원회 출범식에서 얽힘 광자 쌍을 활용한 100㎞ 구간의 양자전송을 시연했습니다. 얽힘 광자 쌍이란 양자얽힘 관계의 두 광자라는 것이 이제는 이해되겠지요. 100㎞는 국내 최장기록일 뿐 아니라 미국, 중국 등 선진국과도 맞먹는 수준이라는 게 ETRI 측 설명입니다. 최근 KT도 “양자를 이용해 직접 데이터를 전달하는 기술을 통해 ‘양자인터넷’ 시대를 한단계 앞당길 계획”이라고 발표하는 등 민간에서도 기술 개발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양자인터넷은 양자전송의 다음 단계 기술입니다. 아직 선진국들도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죠. 양자얽힘 거리를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양자중계기와 같은 추가 기술 개발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100㎞ 정도의 양자전송 구간 여러 개를 연결해 전국, 나아가 글로벌 단위의 인터넷을 구현하겠다는 거죠. 한국은 올해 착수한 7000억 원 규모의 ‘양자 플래그십 프로젝트’ 사업의 일환으로 2030년대 1000큐비트 양자컴퓨터와 함께 양자중계기 기술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양자얽힘은 ‘양자연결’ 내지는 ‘양자클러스터링’이라고 부르는 또다른 양자컴퓨터 기술로도 응용되고 있습니다. 전편들에서 설명했듯 양자컴퓨터의 큐비트 규모를 무작정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1000큐비트 정도가 한계로 알려져 있는데요. 대신 1000큐비트 양자컴퓨터 여러 대를 연결해 수천 큐비트짜리 한 대처럼 운용하는 기술이 양자연결입니다. 이 역시 여러 양자컴퓨터들의 큐비트 입자들 간의 양자얽힘이 필수적이겠죠. 20큐비트짜리 국산 양자컴퓨터를 개발한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등이 기술 확보에 나선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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