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특정大 아니면 승진도 힘들어…토호화 막을 평가지표 만들어야"

■공기업 인재 불균형 심화

가스公 7년간 특정대학 채용 확대

서울 주요대학 5곳 출신보다 많아

지역 의무채용이 '인재 등용' 막아

도로·철도·농어촌公도 매한가지

"기업내 세력화로 경쟁력 저하 우려"

서울대 정문. 연합뉴스.






국내 행정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공기업과 공공기관들이 사실상 ‘제2의 정부’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정부가 공공기관에 떠넘기는 국책 사업이 워낙 다양하고 그 규모도 크기 때문이다.

야당이 예산을 전액 삭감해 석유공사가 그 부담을 전부 껴안은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석유공사는 과거 자원 개발 사업 실패 등의 영향으로 21조 1664억 원에 이르는 부채를 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연간 이자비용만도 5000억 원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야당이 대왕고래 예산을 전액 삭감해 1000억 원의 1차 시추 비용을 모두 떠안았다. 이 비용은 알뜰주유소와 같은 다른 사업 예산에서 끌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공기업의 정책 실패가 단순히 실적 악화를 넘어 국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실증 사례인 셈이다. 현재 대왕고래 프로젝트의 사업비는 총 5760억 원으로 향후 사업비가 더 늘어나면 석유공사는 공사채를 발행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2022년 한국전력 회사채처럼 채권시장 수급을 교란할 가능성이 있다. 정부 보증을 받아 신용등급이 높은 공기업 채권이 더 많이 발행되면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은 더 높은 금리를 부담해야 한다. 2024년 기준 국내 35개 공공기관의 부채 규모는 701조 9000억 원으로 2023년(664조 1000억 원) 대비 5.7% 증가했으며 향후 더 늘어 자금 시장 전반을 짓누를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공기업들의 인재 불균형 현상이 이 같은 경쟁력 저하를 더욱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앞으로 우리나라가 제2의 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공기업들이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해야 하는데 지방 이전 이후 10년이 지나면서 성장 대신 현상 유지에 멈춰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국내 공기업들의 인재 쏠림 현상은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가스공사의 경우 지방 거점국립대학인 경북대 출신이 채용 시장을 사실상 독식하는 구조다. 지난해 전체 채용 규모는 124명이었는데 경북대가 21명으로 전체 신입 사원의 17%를 차지할 정도로 가장 많았고 영남대가 13명으로 뒤를 이었다. 반면 서울권 대학의 경우 서울대 3명, 고려대 2명, 연세대 2명에 그쳤다. 지역인재 의무채용(신입 사원 중 지역 인재 비중 35%)이 도입된 2018년 이후 7년간 가스공사 입사자를 놓고 보면 경북대는 130명에 달했지만 서울대·연세대·고려대·서강대·성균관대 등 서울 소재 대학 5곳을 모두 합쳐도 126명에 불과했다.



인재 편중이 장기화되면서 공기업 내부에서 ‘토호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공기업 A사의 한 관계자는 “특정 국립대 출신이 급격히 많아지면서 다른 대학 출신이 승진에서 불리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온다”면서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지방 토호화 이야기가 나오면서 비(非)지방 출신들이 입사를 꺼리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공기업의 토호화가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역행하는 조치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세계 시장 진출을 통해 전력 유틸리티 기업으로 발돋움한 이탈리아 전력회사 에넬(ENEL)이 우리나라의 반대 사례다. 김동철 한전 사장은 지난해 신년사에서 “전 세계 29개국에서 재생에너지와 전력망 사업을 펼치는 에넬이 한전의 모델”이라며 “기술 혁신과 글로벌 시장 진출로 도약을 이뤄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한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과거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으로부터 반도체 설계기업 ARM에 대한 공동 투자 제안을 받고도 각종 투자 규제 때문에 기회를 놓친 실패의 경험을 다시 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이번 기회에 공기업 지방 이전과 인재 채용 제한 등 전반적인 제도에 대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핵심이 되는 혁신도시를 중심으로 규모의 경제를 키워야 비효율의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고 공기업들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조직 내 특정 대학·지역 출신이 모여서 생기는 문제가 있다면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조언도 제기됐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업 내에서 세력화가 이뤄지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세력화는 관료제의 효율성을 해치는 존재라서 그런 부분이 있는지 검증 가능한 평가 지표를 만들고 전면적인 재점검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비수도권 안에서 여러 인재들이 계속 순환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좋을 것”이라면서 “수도권과 비수도권 격차를 해소한다는 차원에서 여러 인재 배치를 통합적으로 하는 건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