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빅테크에 의존하지 않는 소버린(자립형) 인공지능(AI)을 위해서는 차세대 연산 인프라인 양자컴퓨터 기술 자립이 시급합니다.”
최재혁(사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양자기술연구소장은 19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조만간 국산 양자컴퓨터 상용화가 이뤄지는 만큼 한국도 글로벌 경쟁을 따라갈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며 이같이 밝혔다. 표준연은 이달 12일 양자 분야 국가 컨트롤타워로 출범한 양자전략위원회의 첫 회의 안건으로 20큐비트 양자컴퓨터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시연했다. 국산 양자컴퓨터 개발을 넘어 이를 클라우드 서비스 형태로 외부 기업·기관이 쓸 수 있는 상용화 시대가 임박한 것이다.
연구를 이끄는 최 소장은 국산 양자컴퓨터가 특히 글로벌 AI 경쟁에서도 핵심 자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래픽처리장치(GPU)에 이어 양자컴퓨터가 AI를 구동할 차세대 연산 자원으로 주목받으면서다. 그는 “최근 AI 모델은 해외에 데이터를 유출하지 않고 자국 내에서 안전하게 처리해 국방·안보 등 분야에도 활용할 수 있는 소버린 AI로 발전하고 있다”며 “소버린 AI를 뒷받침할 양자컴퓨터 같은 인프라 역시 자체 확보가 필요한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표준연은 정부의 ‘양자 과학기술 허브’로서 20큐비트에 이어 정부가 구상 중인 50큐비트, 2032년 1000큐비트 양자컴퓨터 개발을 주도한다. 다만 구글·IBM 등 빅테크들이 이미 수백 큐비트에 도달하며 격차를 벌리고 있는 만큼 한국만의 추격 전략이 필요한 상황이다. 최 소장은 양자컴퓨터 여러 대를 연결해 큐비트 수를 비약적으로 늘릴 수 있는 ‘양자연결’을 추격 전략의 핵심 기술로 꼽았다.
최 소장은 “현재 해외에서도 기술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양자컴퓨터의 규모 한계를 1000큐비트로 보고 있다”며 “대신 1000큐비트짜리 양자컴퓨터 여러 대를 연결해 2000큐비트는 물론 1만 큐비트까지도 늘릴 수 있는 게 양자연결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말 미국 에너지부(DOE)도 보고서를 통해 유망 기술로 꼽은 바 있다”며 “해외에서도 아직 기술 확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한국이 경쟁에서 빠르게 치고나갈 수 있는 히든카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큐비트는 0과 1의 디지털 정보를 동시에 가진 양자 상태로 빛이나 고온 같은 외부 영향을 받으면 쉽게 왜곡된다. 양자컴퓨터들을 단순히 전선이나 무선통신으로 연결하면 정보 전달 과정에서 외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 새로운 정보 전달 수단으로 양자연결이라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게 최 소장의 설명이다.
그는 “5~10년 뒤면 전 세계 양자 공급망이 확정될 텐데 우리 기술 확보가 그보다 늦으면 이미 해외 업체들이 선점한 시장에는 끼어들기가 힘들어질 것”이라며 “양자전략위를 중심으로 산학연 등 여러 플레이어들이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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