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통과된 상법 개정안을 시행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과도 등을 지는 입장이고, 최상목 대통령 권항대행의 ‘재의요구권’ 행사 가능성이 나오자 “직을 걸고 반대하겠다”며 강경한 입장도 밝혔다.
금융감독원은 장관급 정부기관인 금융위원회의 지도·감독을 받는 무자본 특수법인이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민주당이 주도한 상법 개정안에 대해 “기업 경영과 자본시장에 불러올 부작용이 크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럼에도 입법 권한이 없는 이 금감원장이 나서 법의 시행을 주장하는 일이 벌어지며 혼선이 이어지고 있다.
논란이 불거지자 금감원은 상법 개정안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참고자료를 19일 내놨다. 재계는 이 자료를 두고 “사실을 과장하고 왜곡했다”며 비판했다. 금융위원회, 나아가 대통령 권한대행과도 충돌을 불사하는 이 금감원장의 주장과 재계의 반박을 정리했다.
쟁점① 이사는 ‘회사’ 보다 ‘주주’에 충성?
금감원 “미국도 이사가 주주에 충실 의무”
경제계 “50개 중 2개주만 해당, 사실왜곡”
금감원 “미국도 이사가 주주에 충실 의무”
경제계 “50개 중 2개주만 해당, 사실왜곡”
금감원은 참고자료에서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 관련 해외사례’에서 미국 델라웨어주의 회사법을 예로 들었다. 이사의 충실의무와 그 위반에 대한 법적 책임 대상에 회사와 더불어 주주도 병기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금감원은 “충실의무가 ‘주주의 이익을 위하여 회사에 대하여’ 의무와 책임을 부담하는 구조가 아니라 ‘주주의 이익을 위하여 주주에 대하여’ 의무와 책임을 부담하는 구조임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재계는 금감원이 해외 사례를 과대 포장해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미국의 50개주 중 회사법에 이사의 충실의무에 주주가 언급된 곳은 델라웨어와 캘리포니아주 두 곳 뿐”이라는 주장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외국의 어느 입법례에서도 이사가 (회사가 아닌) 주주에게 직접적으로 충실할 의무를 진다는 규정은 가지고 있지 않다”고 강했다. 한국경제인협회도 “(델라웨어법은) 이사의 책임을 주장하는 자가 귀책사유를 증명하지 못하면 이사는 주주나 회사에게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을 명시한 규정” 이라며 “최근 국회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처럼 주주에 대한 이사의 책임을 강행하는 주장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상법개정안에 찬성하는 이유로 미국의 모범회사법도 들었다. 이 법에는 이사가 공정하게 대할 의무를 가진 상대방에 회사와 주주를 함께 규정했다는 주장이다. 재계는 이에 대해 “미국의 모범회사법은 각 주의 회사법에 대한 모범규준일 뿐 법적으로 효력은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모범회사법에 명시된 ‘이사의 행동 기준’ 규정은 이사가 직무를 수행할 때 주주가 아닌 ‘회사’의 이익에 최선의 결과가 될 수 있도록 결정해야 한다(in a manner the director reasonably believes to be in the best interests of the corporation)고 규정하고 있다.
쟁점② 특별한 상황에선 ‘주주’ 우선?
금감원 “주주 이익 침해 땐 주주 우선”
경제계 “지극히 예외 상황에 적용돼”
금감원 “주주 이익 침해 땐 주주 우선”
경제계 “지극히 예외 상황에 적용돼”
금감원은 ‘이사가 주주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는 특별한 거래 상황에 놓일 때 주주에 대한 의무를 우선해야 한다’고 제시한 영국의 회사법 판례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재계는 금감원이 판례를 과장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우선 영국 고등법원은 2019년 판결에서 “회사의 이사는 단순히 이사라는 지위 만으로 주주에 대해 충실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는 일반론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명시했다. 그런데 금감원이 이사가 ‘특별한 거래 상황’에 놓인 상황을 예로 들어 이사가 주주에게 충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특히 재계는 해당 판결은 이 특별한 상황을 △이사가 주식 처분과 관련해 매수자이거나 매수에 관심이 있거나 △소규모·가족 소유 기업 등 일반적인 이사와 주주의 관계가 아닌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 한경협은 “매우 특별하고 제한적인 경우에만 한정되는 사례에 한정된다”고 지적했다.
쟁점③ 주주환원=기업가치 상승?
금감원 “한국은행의 실증분석 결과”
경제계 “한은, 과도한 환원은 우려”
금감원 “한국은행의 실증분석 결과”
경제계 “한은, 과도한 환원은 우려”
금감원은 한국은행의 ‘주주환원 정책이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도 상법 개정안의 찬성 근거로 들었다. 이 연구는 주요 20개국(G20) 중 16개국 3560개 기업을 대상으로 주주 환원이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을 실증분석했다. 그 결과 일반 주주의 권익이 강화될 수록, 주주 환원을 적극 실시해 기업가치가 상승했다.
이에 대해 경총은 “해당 보고서는 '시설투자, 연구개발과 같은 자본지출(투자)이 기업 성장의 핵심 요소인 산업의 경우 여유자금을 주주환원에 과도하게 사용하면 오히려 기업가치 제고를 저해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반도체와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기술 기업이 필요 이상으로 주주환원에 나서면 기업가치가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경총은 “이와 같이 산업별로 기업가치 제고 방식이 다를 수 있고 이에 따라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다”라며 “모든 산업과 모든 기업에 대해 광범위한 영역에서 적용될 수 있는 상법을 개정하는 것은 주주보호라는 목표에 효과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복현·민주당 “상법 개정안 시행”
재계 “상법 아닌 자본시장법 개정”
재계 “상법 아닌 자본시장법 개정”
경제계는 주주 이익 보호를 위해 상법이 아닌 자본시장법을 개정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이사가 회사보다 일반 주주의 이익에 충실해야 한다는 법이 시행되면 이사와 회사의 위임관계에 기반한 회사법의 근간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소수주주 보호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기본법인 상법을 개정해 모든 기업에 광범위하고 일반적인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는 문제도 제기하고 있다. 이는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에 배치된다는 게 재계의 주장이다. 재계 관계자는 “소수주주 이익보호 방안으로 무리한 상법 개정 대신 자본시장법에 개선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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