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합의한 국민연금 개혁안의 핵심은 ‘더 내고 더 받는’ 구조로 연금 구조를 뜯어고치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보험료율이 인상된 것은 김대중 정부 때인 1998년 1차 개혁 이후 이번이 27년 만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2차 개혁 때는 보험료율은 유지하되 소득대체율을 2028년까지 40%로 점차 낮추는 방식이었다.
올해 3차 개혁에 따라 가입자들이 평균적으로 추가 부담해야 하는 액수는 가입자와 직장을 합쳐 월 12만 원 수준으로 예상된다. 여야가 국민연금 재정의 지속 가능성과 소득 보장성을 두루 감안하면서 받는 돈도 월평균 9만 원 늘어나게 된다. 다만 이번 모수 개혁(보험료·소득대체율 조정)은 국민연금 기금의 적자 전환 시점과 고갈 시점을 각각 7년과 9년 늦추면서 일단 급한 불을 끄는 것에 불과할 뿐 자동조정장치 등을 포함한 조속한 구조 개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게 연금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2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에는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3%와 국가 지급 보장 명문화, 군 복무 및 출산 크레딧(가입 기간 인정) 확대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로, 소득대체율은 40%에서 43%로 올리면서 국민연금 기금 소진 시점이 2055년에서 2064년으로 9년 늦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기금운용수익률 목표를 현재의 4.5%에서 5.5%로 함께 올리면 기금 고갈 시기는 2071년까지 더 미룰 수 있다는 게 보건복지부의 설명이다. 2093년까지의 기금 누적 적자는 현행 2경 1669조 원보다 6973조 원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선진국들은 기금을 70년간 유지할 수 있어야 튼튼한 연금제도로 판단하기 때문에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가입자가 납부하는 보험료율은 2026년부터 매년 0.5%포인트씩 인상된다. 요율 인상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인상 속도를 조절했다. 가령 40대 직장인 A 씨가 월급 309만 원을 받고 있다면 월 보험료는 올해 27만 8000원(309만원×0.09)이다. 이 금액을 회사와 A 씨가 13만 9000원씩 나눠 낸다. A 씨의 월 보험료는 내년에 29만 4000원(보험료율 9.5%), 2027년에는 30만 9000원(10%) 등으로 늘어나게 된다. 보험료율이 13%가 되는 2033년에는 월 40만 2000원을 내야 한다. 직장인과 달리 보험료 인상의 충격을 나 홀로 견뎌야 하는 저소득 지역가입자에게는 12개월간 보험료의 50%를 국가가 지원할 수 있게 됐다.
받는 돈인 소득대체율은 내년부터 한 번에 43%로 올려 노인 빈곤층을 보다 두껍게 지원하기로 했다. 당장 A 씨가 받을 첫 연금액은 123만 7000원에서 132만 9000원으로 늘어난다. 생애 전체에 걸쳐 내는 돈과 받는 돈이 각각 5400만 원, 2200만 원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A 씨 같은 직장인 가입자가 내년에 국민연금을 신규 가입해 40년간 1억 8000만 원을 납부하고 25년간 3억 1000만 원을 수령한다는 가정에 따른 것이다.
연금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크레딧 제도도 확대된다. 2008년 도입된 크레딧은 군 복무나 출산 등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행위에 대한 보상으로 국민연금 가입 기간을 추가로 인정해주는 제도다. 군 복무자에 대한 가입 기간 추가 인정분은 기존 6개월에서 최대 12개월로 늘어난다. 둘째 자녀에 12개월, 셋째 자녀부터는 18개월씩 최장 50개월의 가입 기간을 얹어주는 출산 크레딧은 상한을 폐지하고 둘째가 아니라 첫째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첫째 출산과 군 복무까지 감안한 A 씨의 월 연금액은 138만 7000원으로 5만 8000원 불어난다.
문제는 자동조정장치를 포함한 향후 구조 개혁은 모수 개혁보다 더 난항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이날 “향후 연금특위 등에서 재정 안정화 조치(자동조정장치) 도입과 국민·기초·퇴직·개인연금 등 구조 개혁 과제가 충실히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인구구조나 경제 상황에 따라 보험료와 수급 연금액, 수급 연령 등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자동조정장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24개국이 도입했다. 정부가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하더라도 최소한 낸 만큼은 받을 수 있다면서 연금 수령액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득하고 있지만 야당 일각에서는 ‘자동삭감장치’라며 반대하고 있다.
김학주 동국대 교수는 “모수 개혁과 함께 자동조정장치를 반드시 도입하겠다고 여야가 선언해야 한다”며 “그것이 연금 개혁에 대한 진정성을 국민 앞에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촉구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계수 조정을 개혁으로 포장하는 방식이 아니라 연금의 중복성과 모호성을 제거하고 국가의 기여를 늘리는 방식으로 구조 개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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