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반 태생의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같은 기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활동까지. 새 IOC 위원장 커스티 코번트리(42·짐바브웨)와 유승민(43) 대한체육회장은 공통점이 많다. 현재 한 명뿐인 한국인 IOC 위원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기대감과 함께 2036년 올림픽 유치 활동에 있어서도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일 만하다는 평가다.
21일(한국 시간) 그리스 코스타 나바리노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코번트리는 제10대 IOC 위원장에 선출됐다. 6월 부임부터 임기는 8년이며 한 차례 4년 연장도 가능하다. 12년간 ‘세계 스포츠 대통령’으로 일하는 것이다. 1894년 초대 위원장인 디미트리오스 비켈라스(그리스)가 선출된 이후 130여 년의 역사에서 여성 IOC 위원장은 코번트리가 처음이다. 그는 첫 아프리카 출신 IOC 위원장이기도 하다.
1차 투표에서 코번트리는 전체 97표 가운데 과반인 49표를 정확하게 얻어 2차로 갈 것도 없이 당선을 확정했다.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주니어(스페인) IOC 부위원장이 28표, 서배스천 코(영국) 세계육상연맹 회장은 8표를 얻는 데 그쳤다. 코번트리는 이들을 포함해 다비드 라파르티앙(프랑스) 국제사이클연맹 회장, 와타나베 모리나리(일본) 국제체조연맹 회장, 요한 엘리아쉬(스웨덴) 국제스키스노보드연맹 회장, 파이살 알 후세인 요르단 왕자까지 6명을 넉넉히 제쳤다. 후보 중에서도 여성은 코번트리가 유일했다.
그는 2004 아테네 올림픽 수영 여자 배영 200m와 2008 베이징 올림픽 같은 종목 금메달을 딴 올림픽 챔피언 출신이다. 올림픽 메달만 7개(금 2, 은 4, 동 1). 2012 런던 올림픽 기간에 IOC 선수위원에 당선돼 체육 행정에 진출했고 2023년에는 IOC 집행위원에 올라 2032 브리즈번 올림픽 조정위도 이끌어왔다. 2016년 선수위원에 뽑힌 유 회장은 2020년에 선수위원 임기를 마친 코번트리와 약 4년간 활동을 함께했다. 짐바브웨가 동·하계 올림픽에서 따낸 역대 8개 메달 가운데 7개를 책임진 ‘짐바브웨의 올림픽 영웅’ 코번트리는 자국의 체육부 장관도 지냈다.
2013년부터 일한 토마스 바흐 현 위원장이 막후에서 코번트리를 지원했다. 역대 최다인 7명의 후보가 출마하면서 치열한 경쟁이 예상됐지만 코번트리는 강력한 경쟁자로 꼽혔던 코 육상연맹 회장을 여유롭게 따돌렸다.
처음 위원장직을 맡는 시점 기준으로 역대 두 번째로 어린 코번트리는 “(저의 당선은) IOC가 진정한 글로벌화와 다양성에 대한 개방에 나서야 한다는 강력한 시그널”이라며 “투표 결과 자체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기를 바란다. 유리천장은 오늘 산산조각났다. 롤모델로서의 책임감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여성 스포츠 보호 등 양성평등에 지대한 관심을 가져온 코번트리처럼 유 회장도 여성 스포츠와 여성 인재 중용에 적극적이다. 1월 당선 뒤 경남 함안에서 훈련 중인 여자축구 선수들을 찾아가 격려하는가 하면 체육회 역사상 처음으로 사무총장에 여성을 발탁했다.
유 회장은 “여성 최초의 IOC 위원장 당선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코번트리 당선인은 누구보다도 선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공정하고 포용적인 스포츠 문화를 만들어 온 리더다. 앞으로도 IOC가 세계 스포츠 발전을 이끌어가는 데 큰 역할을 해주리라 믿는다”고 전했다. 이어 “당선인과는 오랜 기간 친분을 쌓아온 사이다. 앞으로도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긴밀히 협조해 국제 스포츠계에 긍정적인 변화와 발전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유 회장이 국가올림픽위원회(NOC) 대표 자격으로 IOC 위원직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더 자연스러워졌다. 현재 한국인 IOC 위원은 김재열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회장이 유일하다. 유 회장은 다음 달 스위스 로잔의 IOC 본부를 찾아 일찌감치 잡아 놓았던 바흐 위원장과의 면담 일정을 소화한다. 2036 전북 하계올림픽 유치 의지를 전하기 위함이다.
IOC 문화·올림픽유산위원회 위원이기도 한 윤강로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장은 “코번트리의 당선으로 IOC 내 바흐의 입김은 더 강하게 작용할 것이다. 현재 IOC 전체 위원의 60% 이상이 바흐가 앉힌 인물”이라며 “올림픽개최지선정위(FHC)가 주도하는 기존의 개최지 선정 방식을 선호하되 선정 시기는 빨라질 수 있다. 스폰서십 유치가 당면 과제이기에 글로벌 대기업 확보가 용이한 국가·도시에 올림픽 개최지로서 무게를 둘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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