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의 기준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상황에서 금융사 대출이 실질적으로 줄고 정부 재정지출은 쪼그라들면서 기업과 가계의 돈줄이 말라가고 있다. 경기 안정화에 쓰이는 재정과 통화, 신용 세 가지 도구가 동시에 한국 경제를 옥죄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책 조합을 바꾸지 않으면 ‘도널드 트럼프발 관세 폭탄’에 휘청이는 성장률이 더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관련 기사 3면
23일 한은에 따르면 국내 금융사의 여신 증가율에서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뺀 대출 상승 폭이 지난해 -2.03%포인트를 기록했다. 신용 공급이 경제와 물가가 커지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는 2010년(-5.83%포인트) 이후 14년 만의 최저치다. 마이너스는 2012년(-0.2%포인트) 이후 처음이다.
정부는 위기 때 대출 증가를 유도해 경기 진폭을 줄인다. 금융위기였던 2008년 실질 대출 증가율은 9.16%포인트였고, 2020년 코로나19 당시는 9.77%포인트에 달했다. 이 수치가 큰 폭의 마이너스였던 2010년은 명목 GDP가 9.89%였다. 위기 후 경제가 살아나면서 한은이 금리를 올렸고 자연스레 대출 증가율이 감소했다. 하지만 지난해는 금리 인하가 시작된 경기 후퇴기인데 대출이 제대로 늘지 않았다. 올 들어서도 강남 집값을 잡으려다 보니 가계대출이 꽉 막혀 있다.
한은의 정책금리(2.75%) 역시 제약적이다. 부동산과 고환율에 인하 시점이 밀렸다. 경제를 가열하지도 냉각하지도 않는 중립금리는 1.8~3.3%로 중앙값이 기준금리를 웃돈다. 올 1월 광의통화(M2)가 약 4204조 원이지만 핵심 자금은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와 맞물려 부동산으로 흘러갔다.
정부 지출도 마찬가지다. 야당이 주도한 초유의 감액 예산에 올해 총지출 증가율이 2.5%에 불과하다. 정치 이슈에 추가경정예산은 물건너갔다. 2월까지 지출 누적 집행률 20.1%는 과거 15년 평균(20.8%)보다 낮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3대 정책이 모두 타이트하게 운용되고 있어 내수 위축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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