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이 2년 만에 중국을 방문해 중국 정재계 인사들은 물론 미국과 유럽, 아시아 기업인들과 폭넓게 교류하며 사업 보폭을 넓혔다. 이 회장은 23일 중국발전포럼(CDF) 참석에 앞서 22일 레이쥔 샤오미 회장과 회동하며 전장(차량용 전자·전기 장비) 및 파운드리 사업을 둘러싼 양사 간 협력 방안을 협의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 회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만남 가능성이 주목되는 가운데 애플과 브로드컴 등의 최고경영자(CEO)와 네트워킹 및 사업 협력을 다진 부분도 관심사다. 재계는 최근 ‘사즉생’을 임원들에게 주문하며 결기를 다진 이 회장이 삼성의 위기 극복을 위해 직접 발로 뛰며 글로벌 네트워크를 재가동한 것으로 분석했다.
이 회장과 레이 회장 간 회동은 삼성전자와 샤오미 간 협력 기대치를 높이는 대목이다. 모바일 기기와 가전제품에서 삼성전자의 경쟁사인 샤오미는 지난해 전기차로 사업을 확대하면서 삼성의 잠재 고객사가 됐다. 샤오미는 지난해 전기차 SU7을 처음 출시해 14만 대를 판매했고 올 들어선 전기차 출하 목표량을 35만 대로 높여 잡았다. 이 회장과 레이 회장간 만남에 현지에선 삼성이 미중 갈등에도 중국 기업들을 존중하는 데 호평이 나오고 있다.
삼성은 실제 여러 계열사를 통해 샤오미와 다각적인 협력이 가능하다. 특히 삼성전자 메모리 사업부가 차량용 메모리반도체를 공급하거나 샤오미가 설계한 차량용 시스템온칩(SoC) 제조 물량을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가 맡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삼성전자는 중국 바이두의 차량용 AI칩 쿤룬과 니오의 NX9031 등을 위탁 생산하고 있다.
삼성전자 자회사인 하만이 공급하는 디지털 콕핏과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관련 솔루션이나 삼성디스플레이가 생산하는 차량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삼성SDI의 전기차 배터리도 샤오미와 협력이 가능한 부분이다. 최근 삼성디스플레이는 퀄컴의 ‘스냅드래곤 콕핏’을 구현한 콕핏 체험 데모 키트 ‘CEDP’에 OELD를 공급했는데 이 같은 제품을 납품하는 방식으로 삼성·샤오미·퀄컴 간 삼각 협력 가능성도 열려 있다.
그간 이 회장은 자율주행차·전기차 배터리 사업 등에 글로벌 네트워크를 적극 동원해 사업 확대에 힘을 실었다. 삼성SDI가 스텔란티스와 미국에 배터리 셀·모듈 합작법인을 세우고 북미 전기차 시장에 진출한 것도 이 회장이 과거 스텔란티스 최대주주인 엑소르 사외이사를 지낸 것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이 같은 연장선에서 이 회장이 위축된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과 신성장 동력인 전장에서 미국·중국 기업들과 동맹을 맺어 활로를 찾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중 갈등이 격화하는 와중에 양국 주요 기업인들과 관계 강화는 삼성의 리스크 관리에도 기여할 전망이다.
이 회장은 23일 CDF에서도 팀 쿡 애플 CEO와 혹 탄 브로드컴 CEO, 올라 칼레니우스 메르세데스벤츠 회장 등 글로벌 기업인들과 만나 다양한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만남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미국의 대(對)중국 규제가 심화하고 있는 만큼 안정적인 중국 공장 운영을 위해 시 주석 등 중국 정계 최고위급 인사와 소통은 필수적이다. 삼성전자가 중국 시안에서 운영 중인 낸드 공장은 삼성의 전체 낸드 생산량 중 40%를 책임지고 있다. 이 회장은 2023년 CDF 참석에 앞서 시 주석의 최측근 중 한 명인 천민얼 톈진시 서기와 면담한 바 있다.
조만간 방한할 사티아 나델라 MS CEO와 이 회장이 만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나델라 CEO는 26일 ‘MS 인공지능(AI) 투어 인 서울’ 행사 참석 차 방한한다. 두 사람은 수차례 만나 반도체와 AI, 클라우드 컴퓨팅 등 차세대 기술과 관련한 양사의 전략을 공유하고 공조 방안을 논의해왔다.
지난달 3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부당 합병 및 회계 부정 혐의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이 회장이 올 들어 처음 해외 경영에 나서고 베이징을 첫 방문지로 택해 향후 그의 글로벌 경영 행보가 속도를 높일 것이라는 관측 역시 제기된다. 최근 이 회장이 삼성그룹 전체 임원들에게 “‘사즉생(死卽生·죽기로 마음먹으면 산다)’의 각오로 과감하게 행동할 때”라고 주문한 만큼 솔선수범한다는 의지로도 해석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의 글로벌 네트워크는 삼성에 미래 먹거리 발굴과 핵심 사업에 힘을 싣는 ‘해결사’ 역할을 해왔다”며 “이번 중국 출장도 그 같은 포석으로 읽힌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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