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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개발 뒷전…점유율 경쟁에 베끼기 성행

[ETF 치킨게임]

무분별 출시로 1000개 돌파 목전

신상품보호제도 사실상 무용지물

상폐·관리종목 속출…투자자 피해

이미지투데이




국내 자산운용사 간 상장지수펀드(ETF) 시장 점유율 경쟁이 격화하면서 ‘ETF 베끼기’가 성행, 상품 품질 저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거래소가 지난해 마련한 신상품 보호제도도 사실상 무용지물로 남은 실정이다.



24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1일 기준 국내 ETF 수는 960개로 2021년 말(533개) 대비 400개 넘게 증가했다. 올 들어서 약 4개월 동안 ETF 수가 35개 늘어나며 어느새 1000개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양적으로 늘었어도 세세하게 뜯어보면 몇 년 새 비슷한 ETF가 쏟아져 나오는 모습이 되풀이된다. 당장 시장점유율에 집착하는 대형 운용사들이 자금력과 업계 영향력을 동원해 시장 장악에 나서면 신상품 개발을 위한 동인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대표적으로 올해 KB·신한·한화·삼성액티브운용 등 4개 운용사가 지난해 말 키움투자자산운용이 국내에 처음 출시하며 인기를 끈 양자컴퓨팅 테마형 ETF를 줄줄이 내놓으며 주목을 받았다. 최근 운용사들의 관심은 타깃데이트펀드(TDF) ETF에 쏠려 있다.

ETF 베끼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22년 신한자산운용이 국내 첫 월 배당 상품인 ‘SOL 미국배당다우존스’ ETF를 출시한 후 미래에셋자산운용이 기초 자산이 비슷한 ‘TIGER미국배당다우존스’를 내놓자 논란이 됐다. 이듬해인 2023년에는 신한운용이 2차전지 소재·부품·장비(소부장) ETF를 첫 출시한 후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운용이 유사 콘셉트로 상품을 내놓으며 불을 지폈다. 이러한 모습에 국내 ‘ETF의 아버지’로 불리는 배재규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는 ETF 경쟁력의 핵심으로 ‘상품 개발’을 늘 강조한다.

신상품 보호를 위한 제도는 있으나 마나 한 상황이다. 지난해에 이어 이날까지도 ETF와 상장지수증권(ETN) 등 신상품의 배타적 권리 인정을 요구한 운용사나 증권사는 단 한 곳도 없다. 신상품 보호제도는 ETF와 ETN 신상품의 배타적 권리를 인정해 6개월 동안 독점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앞으로도 신상품 보호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같은 테마라도 구성 종목에 차이가 있거나 종목 비중, 운용 방식 등의 세부 조건이 다르면 같은 상품으로 취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거래소가 심사 강화에 나서고는 있으나 명확한 규정을 세우기가 어려운 탓에 좀체 진전이 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운용 업계 관계자는 “규정을 세우려면 운용사들이 서로 의견을 모아 가이던스를 줘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무분별한 출시로 상품 수는 빠르게 늘고 있지만 한쪽에서는 상장폐지되는 ETF도 속출하고 있다. 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날까지 상장폐지된 ETF 수는 총 35개다. 같은 기간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ETF 수는 20건에 달한다. 한 운용 업계 ETF 운용역은 “상품 베끼기가 만연해지고 독창성이 사라지면 총보수 인하밖에 남는 게 없다”며 “과점이 심해지면 결국 투자자들에게 피해가 전이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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