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올해부터 4년간 미국에 210억 달러(약 31조 원)를 투자한다. 이번 투자로 준공식을 앞둔 현대차(005380)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생산능력을 30만 대에서 50만 대로 확대하고 루이지애나주에 전기로 일관 제철소 건설을 추진한다. 대규모 투자를 통해 미국 제조업 재건 등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에 대응하고 사업 기회를 확대해 현지 톱티어 기업으로서 위상을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현대차그룹은 24일(현지시간) 올해부터 2028년까지 미국에서 자동차, 부품 및 물류, 철강, 미래 산업 등 산업 분야에 210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이날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제프 랜드리 루이지애나 주지사와 함께 한 자리에서 직접 투자계획을 소개했다. 그는 “그동안 현대차는 1986년 미국 진출 이후 2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해 현재 미국 50개 주에서 57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지원하고 있다”며 “오늘 저는 앞으로 4년 동안 210억 달러를 추가할 계획이라는 기쁜 소식을 전한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자동차 부문에서 미국 현지생산 120만 대 체제 구축을 위해 총 86억 달러(약 12조 6000억 원)를 투자한다. 현대차그룹은 2004년 가동을 시작한 현대차 앨라배마공장(36만 대)을 시작으로 2010년 기아(000270) 조지아공장(34만 대), 올해 HMGMA(30만 대)를 완공해 100만 대 규모의 현지 생산능력을 확보했다.
앞으로 HMGMA 연간 생산능력을 20만 대 더 늘려 50만 대로 확대한다. 또 앨라배마공장, 조지아공장 등 기존 공장도 고품질의 신차를 지속 생산할 수 있도록 생산설비의 현대화, 효율화 등 보완 투자를 진행한다. 이를 통해 연간 120만 대 생산 체제 기반을 확실히 다진다는 목표다.
현대차·기아와 동반진출한 부품·물류·철강 그룹사들도 61억 달러(약 9조 원)를 집행한다. 완성차 공장과 부품사 간 공급망을 강화하는 것이다. HMGMA 생산능력 확대에 맞춰 설비를 증설해 부품 현지화율을 높이고 배터리팩 등 전기차 핵심부품의 현지 조달을 추진한다.
미국 루이지애나주에는 270만톤 규모의 전기로 제철소를 건설한다. 저탄소 자동차 강판 특화 제철소로 고품질의 자동차강판 공급 현지화를 통해 관세 등 불확실한 대외 리스크에 대응력을 높인다. 또 견고한 철강 수요를 기반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해 철강 분야 신성장 동력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된다.
미래산업·에너지 부문에서는 63억 달러(약 9조 2400억 원)를 투자한다. 자율주행과 로봇, 인공지능(AI), 미래항공모빌리티(AAM) 등 신기술과 관련한 미국 유수의 기업과 협력을 확대하고 현대차그룹 미국 현지 법인인 보스턴다이나믹스, 슈퍼널, 모셔널의 사업화에 속도를 낸다. 또 미래 기술 관련 유망한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선제적 투자를 집행한다.
원자력·재생에너지 분야 투자와 함께 전기차 충전소 확충에도 힘을 보탠다. 현대건설은 미국 홀텍 인터내셔널과 손잡고 올해 말 미국 미시건주에 SMR(소형 원전 모듈) 착공을 추진한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해 미국 텍사스주 태양광발전소 사업권을 인수하고 2027년 상반기 상업운전을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 내 자동차기업들과의 전기차 초고속 충전 서비스 연합체인 아이오나(IONNA)를 통해 충전소 설치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의 이번 대미 투자계획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대응하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12일 25%의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내달 2일에는 국가별 상호관세 발표를 예고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차그룹은 새로운 투자계획에 따라 루이지애나주에서 철강을 직접 생산하고 완성차 현지 생산을 늘리면서 관세를 피하고 가격 경쟁력을 강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현대는 미국에서 철강을 생산하고 미국에서 자동차를 생산하게 되며 그 결과 관세를 지불할 필요가 없다”고 화답했다.
현대차그룹은 국내 투자도 확대하고 있다. 올해 초 현대차그룹은 한국을 중심으로 미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올해 사상 최대인 24조 3000억 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2024년 20조 4000억 원 대비 19% 이상 늘어난 금액이다. 세부적으로 △연구개발(R&D)투자 11조 5000억 원 △경상투자 12조 원 △전략투자 8000억 원을 각각 집행한다.
연구개발 투자는 제품 경쟁력 향상, 전동화, 소프트웨어중심차(SDV), 수소 제품 및 원천기술 개발 등 핵심 미래 역량 확보를 위해 사용된다. 경상투자는 전기차(EV) 전환 및 신차 대응 생산시설 확충, 제조기술 혁신, 고객체험 거점 등 인프라 보완 등에 투입된다. 전략투자는 자율주행, 소프트웨어(SW), AI 등 핵심 미래 사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집행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전용공장 건설에 대규모 투자를 집행한다. 올해 하반기 기아 화성 이보 플랜트(EVO Plant)를 완공하고 전기 목적기반차(PBV)를 생산할 예정이다. 2026년 상반기 가동을 목표로 건설 중인 현대차 울산 전기차 전용공장에서는 초대형 전기 소프츠유틸리티차(SUV)를 시작으로 다양한 차종을 양산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대규모 투자는 국내외 불확실한 경영환경에 위축되지 않고 적극적인 도전과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으로 미래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인류를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창출하겠다는 의지”라며 “과감한 투자와 핵심 기술 내재화, 국내외 톱티어 기업들과의 전략적 협력 등을 통해 미래 기회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