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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훼손 우려에 결단 내린 崔…"AI 등 집중 투자로 재정효과 극대화"

■'적극 재정'으로 돌아선 정부

내수침체·트럼프發 수출 둔화에

韓 성장률 전망 하향조정 잇따라

바이오·반도체 게임체인저 육성

소상공인 등 사회안전망 강화 나서

"재원 한정적…효율적 배분 필요"

최상목 대통령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4차 공급망안정화위원회'를 주재하며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기획재정부






정부가 25일 발표한 ‘2026년 예산안 편성지침’에서 ‘건전재정’ 대신 ‘적극재정’을 예고한 배경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한국 경제가 직면한 위기 상황을 더 이상 지켜만 볼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자리잡고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건전재정’이 국가 재정 운용의 기본 원칙이었지만 지금은 곳간을 적극적으로 열어 성장률 훼손을 막아야 할 때라고 본 것이다. 전직 경제 부처의 한 고위 관계자는 “재정의 지속 가능성은 중요한 가치이지만 금과옥조로 여겨서는 안 된다”며 “성장률이 마이너스까지 떨어진 뒤에 이를 다시 회복하려면 더 많은 재정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정책통 출신인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본인도 “재정을 풀어야 할 때는 풀어야 한다”는 적극적 재정론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국내외 주요 기관들은 한국 경제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7일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5%로 석 달 만에 0.6%포인트나 끌어내렸다. 트럼프발 관세전쟁의 타격을 직접적으로 받는 멕시코·캐나다를 제외하면 주요국 중 하락 폭이 가장 크다. 그동안 우리나라에 대해 글로벌 투자은행(IB) 중 가장 높은 성적표를 줬던 골드만삭스도 이날 기존 1.8%였던 성장률 전망치를 1.5%로 0.3%포인트 내렸다. 골드만삭스는 보고서에서 “성장률을 내린 이유의 절반은 자동차 관세 부과”라고 설명했다.

독일·중국 등 주요 국가들이 트럼프발 관세 폭탄에 맞서 재정지출을 확대하고 있는 점도 정부가 적극재정으로 선회한 배경으로 꼽힌다. 우선 독일은 5000억 유로(약 791조 원, 독일 GDP의 12%) 규모의 인프라 투자 특별기금을 조성하기로 했다. 독일은 과거 세계대전 과정에서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겪으며 균형재정에 집착해왔지만 역성장 우려에 방향을 틀었다. 우선 5000억 유로(약 791조 원, 독일 GDP의 12%) 규모의 인프라 투자 특별기금을 조성한다. 이는 지난해 독일 연방정부 예산(4657억 유로)을 웃도는 규모다. 인프라 투자 특별기금 조성을 위해 연간 신규 부채를 국내총생산(GDP)의 최대 0.35%로 제한한 부채 한도 규정에 예외를 두는 기본법(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아울러 GDP의 1%로 묶여 있는 국방비도 사실상 무제한으로 늘릴 수 있게 된다. 유럽연합(EU)은 앞으로 5년간 8000억 유로의 자금을 마련해 유럽 차원의 안보 강화에 지출하는 유럽 재무장 계획을 내놓았다. 중국 역시 올해 경기 부양에만 4조 8300억 위안을 쏟아부을 계획이다. 중국은 올해 재정적자율을 역대 최고인 GDP의 4%로 확대해 재정적자 규모만 5조 6000억 위안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박성우 DB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주요 국가들이 트럼프 정부가 주도하는 글로벌 경제 질서 개편에 재정지출로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재정 전문가들 역시 잠재성장률 밑으로 추락한 한국의 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적극적인 재정이 필요한 때라고 지적한다. 특히 인공지능(AI) 등 미래 전략산업에 대한 적극적 예산 편성이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정부 역시 내년 예산안 편성의 주요 방향으로 산업·통상 경쟁력 강화를 꼽고 있다. 특히 AI·바이오·양자 등 이른바 ‘3대 게임 체인저’인 기초·원천 기술에 대해서는 집중투자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여기에 사회안전망도 강화하기로 했다. 취약 계층의 일자리를 늘리고 위기·폐업 소상공인의 재도약을 지원하는 식이다.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AI 지출을 늘린다면 그동안에 비효율적으로 운영됐던 분야들 재정지출은 줄여야 한다”며 “새로운 재정지출 수요가 생기면 미래에 쓸모가 없어지거나 바뀔 분야는 줄여야 한다”고 했다.

이에 따라 매년 가파르게 늘고 있는 의무지출도 수술대에 올리기로 했다. 의무지출은 공적연금·건강보험, 지방교부세·교부금 등처럼 법에 지급 의무가 명시돼 있어 정부가 임의로 줄일 수 없는 예산이다. 여기서 재정 낭비를 줄여 지출 효용성을 극대화하겠다는 게 정부의 복안이다. 관가에서는 학령인구 감소로 축소 주장이 끊이지 않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등도 축소 대상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밖에 인구위기, 지역 소멸 위기 등 구조적 과제에 대한 예산과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비한 핵심 전력 고도화 예산도 편성 지침에 반영됐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쓸 수 있는 재원이 한정적인 만큼 전략적 재원 배분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전 세계 재정 전략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늦게나마 재정정책 기조를 바꾼 것은 잘한 일”이라며 “추경으로는 내수 경기를 살리는 등 급한 불을 끄는 데 집중하고 내년 예산은 첨단 신산업 분야에 중점 투입하는 방식이어야 보다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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