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불확실성이 너무 커져 기업들이 결정하기 어려워졌다”며 “상법 개정은 불확실성이 또 생기는 것인데 지금 (경제) 형편상 적절한 시기인지 의문이 든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25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에서 열린 취임 4주년 기자 간담회에서 “통상 문제와 인플레이션 등 금융 불안, 인공지능(AI) 등 기술 충격에 정치 문제까지 겹쳐 기업뿐만 아니라 자영업자·시민까지 어렵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겹악재로 인한 불확실성을 국내 기업의 최대 리스크로 꼽았다. 최 회장은 “초불확실성의 시대(super unknown)에는 기업의 결정이 안 나온다”며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가장 큰 ‘적’이라고 규정했다. 이사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한 상법 개정안을 재계의 최대 걱정거리로 본 그는 “상법은 경제 쪽에서 보면 헌법” 이라며 “새 국면으로 간다는 뜻인데, 지금 할 시점인가라는 생각이 계속 든다”며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다.
최 회장을 비롯해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윤진식 한국무역협회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 등 경제6단체장은 이르면 27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를 만나 상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 행사를 건의하기로 했다.
주52시간 근무 예외 규정에 대한 논란으로 공전하는 반도체특별법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최 회장은 출근길 교통수단을 예로 들며 “버스만 타라고 하면 오토바이나 택시를 타야 할 상황에서 불편이 생긴다”며 “규제는 필요하지만 너무 많으면 자율을 억압하고 창의성을 추락시켜 성장에도, 사회문제를 푸는 데도 도움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또 1970년대부터 발전시켜온 ‘제조-수출’ 모델을 바꿀 때라고 지적했다. 그는 “통상 압력뿐 아니라 제조업 경쟁력도 좋은 편이 아니어서 과거 모델이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며 “제조업이 지속 가능하려면 AI를 도입해 더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AI를 통해 제조업을 혁신하면 공장 위치를 떠나 한국이 어디서든 이익을 만들수 있는 만큼 AI기반 제조 경쟁력 확보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게 최 회장의 판단이다. 그는 국내 AI 경쟁력과 관련해 “대규모언어모델(LLM)이 필요한데 우리만의 모델을 만들지 않으면 종속된다” 면서 “내부에 일단 AI 기반을 제대로 갖추고 나름대로의 AI LLM을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중국 간 헤게모니 전쟁에 따라 한국이 선택의 기로에 놓인 데 대해 최 회장은 ‘비즈니스’가 기준이라는 분명한 입장을 피력했다. 미국이냐 중국이냐가 아니라 사업이 되고 돈이 되느냐를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돈을 벌 수 있는 확률과 기회가 많으면 어떤 상황이라도 진출해야 한다”며 “미국의 많은 기업인들이 최근 중국을 찾아간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전했다.
최 회장은 복잡한 대외적 난관을 극복하려면 정부와 기업이 원팀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벤트성으로 잠깐 나가서 하는 원팀이 아니라 진짜 한 몸 같은 원팀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그냥 기업만 나가서 전쟁을 할 방법도 없고, 미국도 정부와 기업이 뭉쳐서 대응하고 중국도 그렇게 하고 있는데 우리는 각자도생하자는 게 먹히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최 회장은 지난달 ‘민간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 2기 행정부에 외국인직접투자(FDI)와 에너지 수입, 양국 간 시너지 사업 분야 등을 설명하는 데 주력했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을 상대로 한 미국 무역적자의 80%는 한국이 미국에 다시 FDI 형태로 투자한다고 말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미국산 에너지 수입 확대는 불필요한 수입 늘리기가 아니라 중동산 비중을 낮추는 차원이고, 양국 간 시너지 사업 역시 모두 이익을 보는 분야로 일방적으로 미국을 위한 제안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하워드 러트릭 미 상무장관과의 만남에 대해 “(러트릭 장관으로서는) 정말 없는 시간을 쪼개서 한국 경제사절단을 만났다”며 “미국 측에서는 한국을 중하게 여기고 힘들게 만나서라도 본인들 메시지와 이야기를 전해줬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올 10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를 계기로 열리는 ‘2025 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 의장을 맡고 있는 최 회장은 최근 행사 현장 점검차 경주와 포항을 다녀왔다. 최 회장은 “1700여 명의 기업인을 포함해 2만 명이 모일 것으로 예상한다”며 “전체적으로 보면 7조 4000억 원 정도의 경제적 효과가 있고 고용 효과도 2만 4000명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많은 인원이 오면 숙소가 부족할 수 있어서 포항에 크루즈선을 끌고 오려고 한다”며 “포항에 크루즈 정박 시설이 있고, 거리가 약간 멀기는 하지만 방문한 경제인이 포항제철소 등을 보고 싶어 할 수 있어 관광 코스나 옵션을 만들려고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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