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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중지권 어디에…산불·태풍·지진에도 일해야 했다

안동 골프장, 산불 코앞인데도 캐디 근무

2016년 경주 지진 땐 대형마트 직원남아

폭염·폭우에도 배달노동자, 작업중지 못해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확산되며 피해가 이어진 26일 경북 의성군 옥산면 신계2리 기룡산에서 산불이 민가 방향으로 번지고 있다. 의성=조태형 기자




산불이 옮겨붙기 직전까지 영업을 강행한 한 골프장이 논란이다. 근로자가 긴박한 위험이 있을 때 작업을 멈출 수 있는 작업중지권을 현장에서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방증하는 사례다.

27일 노동계에 따르면 25일 산불이 심각한 경북 안동의 한 골프장은 주변 산으로 산불이 번지고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영업을 강행했다. 관광레저산업노동조합은 이날 성명을 내고 “긴박한 상황에서도 골프장 경기보조원인 캐디들은 근무를 멈출 수 없었다”며 “캐디들은 평소에도 폭염, 폭우, 혹한, 강품 등 기후위기와 재난 속에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는 작업중지권을 법적으로 행사할 수 있지만, 쓰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사측이 작업중지를 할 만한 긴박한 위험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작업 중지기간 입은 손해를 근로자가 보전하라는 요구도 적지 않다는 전언이다.

실제로 2023년 대법원은 7년 만에 작업중지권에 관해 근로자의 손을 들어줬다. 2016년 7월 26일 충남 세종시의 한 산업단지 내 공장에서 위험한 화학물질인 ‘티오비스’가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지점에서 200m 가량 떨어진 공장 근로자들은 어지럼증과 두통 등을 호소했고, A씨는 동료 28명에게 대피를 권유했다. 하지만 사측은 A씨에게 작업장을 무단 이탈하고 조합원들에게 임의로 작업을 중지하게 했다며 정직 2개월 징계를 내렸다. 이에 A씨는 정직 처분 무효확인과 정직 지간 임금 지급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1·2심을 뒤집고 A씨의 손을 들어줬다.



2016년 경주에서 큰 지진이 발생했을 때도 한 대형마트가 논란이었다. 울산에 있는 이 대형마트는 지진이 일어났지만, 직원을 대피시키지 않고 근무를 하도록 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2023년 6월에는 한 대형마트 실내주차장에서 카트를 정리하던 20대 직원이 숨졌다. 사망원인은 온열로 인한 폐색전증이었다. 폭염 속 힘든 작업이 원인인 것으로 추정됐다.

작업중지권 우려는 경북 안동에서 일하던 캐디들처럼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가 아닌 특수형태근로종사는 아예 행사할 자격도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동안 배달노동자는 작업중지권 확대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청연맹 서비스연맹이 작년 7월 발표한 배달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답변자 68%는 ‘이상 기후현상이 있을 때 작업중지권이 보장된다면 사용하겠다’고 답했다. 배달 건수에 따라 수입이 결정되는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배달노동자 절반 이상은 태풍, 폭우 때 자산의 안전을 위해 일을 멈추고 싶다는 것이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작업중지권은 근로자의 당연한 권리임에도 사용자 판단, 회사 손실 등 여러 이유로 현장에서 제대로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며 “올해 작업중지권 강화를 위한 입법 활동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권오성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작업중지권에 관한 보고서에서 “사용자의 업무명령은 합리성이 결여됐다면 법정 구속력이 없고, 이 명령을 받은 근로자는 거부해도 징계처분을 받지 않아야 한다”며 “위험한 업무 수행을 거부할 수 있는 지위가 노예와 근로자를 구별하는 기준”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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