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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노동법 등 줄 폐강…'고시 기계' 만드는 로스쿨

[길 잃은 로스쿨] <상> 공염불이 된 다양성

◆본지, 전국 7곳 강좌 전수분석

경제·노동법 등 수강생 '0명'

1학기에만 38개 과목 줄폐강

형사법 등 변시직결 과목에만 몰려

선택과목 출제진 구하기도 어려워

5년 내 전임교수 40% 정년퇴임

시험방식 조정 등 제도 개편 필요

이미지투데이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서는 올해 1학기 개설될 예정이던 49개 강의 중 ‘유가증권법’ ‘기업계약실무’ 등 8개 과목이 수강 신청 인원 부족으로 폐강됐다. 해당 과목의 담당 교수들은 모두 학부 교양 과목이나 대학원 세미나 과목을 맡게 된다. 서강대는 지난해 1·2학기에도 각각 8개 과목이 폐강된 바 있다. 로스쿨에서 변호사 시험과 관련이 낮은 경제법·노동법 등의 과목이 줄줄이 폐강되는 가운데 ‘다양한 법률 전문성과 실무 능력을 겸비한 법조인 양성’이라는 도입 취지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1일 서울경제신문이 전국 25개 로스쿨 가운데 폐강 내역을 공개한 7곳(경북대·동아대·서강대·연세대·전남대·부산대·충북대)을 전수 분석한 결과 2025학년도 1학기에만 총 38개 과목이 폐강됐다. 폐강된 강의는 주로 노동·금융·기업 관련 실무에서 활용도가 높은 과목들이다.

경북대에서는 ‘세법Ⅰ’, 전남대에서는 ‘중국경제법’ ‘미국계약법’ 등이 수강 신청 인원 ‘0’명으로 폐강됐다. 부산대에서는 ‘국제운송물류법’ ‘지방자치법’ ‘인권법’ ‘미디어와 법’ 등 17개 과목이 폐강됐고 ‘M&A법 연구’ ‘신지적재산권법특수연구’ 등 8개 과목은 수강 신청 인원이 한 명뿐이거나 아예 없어 개설이 불투명한 상태다. 반면 행정법사례연습·형사소송법연습 등 변호사 시험과 직결되는 과목에는 수강 신청이 몰려 매년 증원이 반복되고 있다. 이른바 변호사 시험 과목만 가르치는 학원과 같은 형태로 로스쿨이 파행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최봉경 서울대 로스쿨 교수는 “로스쿨이 다양한 잠재력을 지닌 학생들을 선발하고도 결국 고시 기계로 만들어버린다”며 “변호사 시험에 대비해 판례 1만 2000개를 외우는 데 몰두하다 보니 기초법학이나 선택 과목은 아예 외면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심지어 폐강을 막는 조건으로 수업을 느슨하게 해달라는 요구까지 나올 정도로 로스쿨 교육이 본래의 방향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판례 외우는데만 몰두…조세·지재법 등은 아예 교수도 없어




법학전문대학원이 사실상 변호사를 찍어내는 공장으로 전락한 배경에는 짧은 수험 기간 안에 50% 안팎의 낮은 합격률을 뚫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 학생들이 시험에 불리하다고 판단한 과목을 기피하면서 대학 측도 해당 과목의 전임 교수를 충원하지 않아 강의 폐강과 교수 감축이 반복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문성과 실무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선택과목은 외면받고 공법·민사법·형사법 등 필수과목 위주의 획일적인 교육만 지속되면서 ‘다양한 법조인 양성’이라는 로스쿨의 본래 취지는 퇴색된 지 오래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2023년 제12회 변호사 시험에서 전체 응시생 3255명 중 82%가 국제거래법(47.9%), 환경법(22.9%), 국제법(11.7%) 등 일부 선택과목에 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경제법(7.9%), 노동법(4.2%), 지식재산권법(3.2%), 조세법(2.2%)은 모두 한 자릿수에 그쳤다. 변시는 공법·민사법·형사법 세 과목을 필수로 치르고 7개 선택과목 중 하나를 선택해 응시하는 구조다.

로스쿨 학생들은 기업 자문이나 조세 분쟁처럼 실무 수요가 높은 과목이라도 학습 난도가 높고 고득점이 어려울 경우 선뜻 선택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특히 노동법·조세법·지식재산권법 등은 노무사·세무사·변리사 등 자격사 출신과의 경쟁 부담에 더해 낮은 표준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까지 겹치며 기피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조세법의 경우 총론·소득세법·법인세법 등으로 세분화할 수 있지만 수강 신청 인원이 세 명도 채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이라고 한 로스쿨 관계자는 전했다. 반면 행정법사례연습·형사법기록연습·형사소송법연습 등 변호사 시험과 직결되는 과목에는 수강 신청이 몰려 매년 증원이 반복되고 있다.

문제는 시험 과목 중심의 수강 쏠림이 교수진 축소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에 따르면 전국 25개 로스쿨에서 선택과목을 전담하는 교수 수는 2012년 233명에서 2024년 191명으로 18% 줄었다. 이 가운데 필수과목이나 실무 과목을 병행하지 않고 선택과목만 맡는 교수는 같은 기간 192명에서 140명으로 27% 감소했다. 노동법·조세법·경제법 등 기피 과목은 물론 수험생들 사이에서 선택률이 높은 국제거래법조차 교수 수가 줄고 있다. 국제거래법은 비교적 쉽게 준비할 수 있다고 여겨져 정규 수업보다 단기 특강이나 요약 강의로 대체하려는 수요가 많아 정작 강의실에서는 외면받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 로스쿨은 해당 과목을 맡을 전임 교수가 아예 없는 상황이다. 건국대·충남대는 국제거래법, 서울시립대는 환경법, 제주대는 조세법, 충북대·한국외대는 조세법과 지식재산권법 교원이 공석이다. 심지어 글로벌 기업 법무를 특성화로 내세운 경희대에도 국제거래법과 지식재산권법 전임 교수가 없다. 또 국제법(2개교), 국제거래법(6개교), 노동법(3개교), 조세법(7개교), 경제법(5개교), 환경법(6개교) 등 다수 과목에서 정년퇴직한 교수의 후임이 채용되지 않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로스쿨의 이러한 구조적 위기가 앞으로 더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향후 5년 내 전체 전임 교수의 약 40%에 해당하는 86명의 정년 퇴임이 가까워지고 있지만 수강 수요가 없는 과목은 후임 채용이 지연되거나 무산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조세법은 현재 교수 24명 중 절반이 퇴임을 앞뒀으나 낮은 응시율과 수강생 부족 탓에 후임 채용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이런 가운데 최근 대한변호사협회 산하 로스쿨위원회는 제4주기 평가부터 로스쿨이 일정 수준 이상 개설해야 하는 특성화 선택과목의 기준을 기존 ‘3년간 10개 이상’에서 ‘5개 이상’으로 완화하기로 했다. 교수 인력 부족과 강의 수요 감소를 고려한 조치로 풀이되지만 결과적으로 교육의 깊이와 다양성이 축소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서울 소재 대학의 한 총장은 “수강생이 없어 강의가 폐강되면 해당 교수는 학부나 대학원 강의로 시수를 채우지만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로스쿨 전임 교수를 계속 둘 필요가 있는지 내부에서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며 “교수 1인당 연간 인건비만 해도 1억 원이 넘어 대학 입장에서는 부담이 매우 크다”고 털어놓았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선택과목별 출제위원을 찾으려 해도 과목당 전임 교수가 10명도 안 돼 섭외가 쉽지 않다”며 “최근에는 법무부가 로스쿨 교수만으로는 출제진 구성이 어렵다고 보고 법과대 교수에게까지 위촉을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왜곡된 교육 구조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최근에는 선택과목을 ‘통과·낙제(Pass/Fail)’ 방식으로 평가하거나 시험 없이 수업만 이수하는 방향으로 변호사시험을 개편하자는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교수들 사이에서는 “졸업 학점이 기존 90학점에서 늘어나면 학생들의 반발이 클 것” “시험과의 연계성이 사라지면 선택과목이 또 다른 부담이 될 수 있다” 등의 우려도 적지 않다. 홍대식 한국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은 “교육의 다양성을 회복하려면 단순한 시험 방식 조정만으로는 부족하다”며 “변호사시험 합격률 조정이나 자격 시험 체계 전환 등 보다 포괄적인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로스쿨 인가는 교육부, 평가는 변협…'미충족' 받아도 그대로 유지




법학전문대학원 평가 체계가 교육부와 대한변호사협회로 이원화되면서 일부 항목이 중복되고 평가 결과가 실제 행정 조치로 이어지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변협의 평가 결과가 교육부의 정원 조정이나 인가 등 제도 운영에 실질적으로 반영되지 않고 교육부 역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으면서 평가가 형식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두 기관의 역할과 평가 기준을 전면적으로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한변협 산하 로스쿨 평가위원회의 제3주기 평가(2017~2022년)에서 조건부 인증 또는 한시적 불인증 판정을 받은 16개 로스쿨 가운데 절반인 8곳이 재평가를 신청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인하대가 변협의 평가에 반발해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법원이 “변협 평가위원회는 공식 인증기관이 아니며 해당 평가는 행정처분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취지로 판단하자 로스쿨들 사이에서는 “굳이 다시 평가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는 것이다. 한 로스쿨 원장은 “평가 결과가 교육부 인가나 정원 조정과 직접 연계되지 않기 때문에 재평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변협의 평가는 형식적인 절차는 갖추고 있으나 실질적인 영향력은 미미하다는 지적이다. 평가는 5년 주기로 이뤄지며 학생, 교원, 교육 환경, 교육과정, 교육 성과 등 다섯 가지 항목을 기준으로 충족 여부를 판단한다. 그러나 평가 결과가 정원 감축이나 인가 취소와 같은 행정 조치로 이어지는 사례는 없다. 변협은 교육부에 시정 조치를 요구할 법적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변협은 최근 ‘인증’과 ‘불인증’이라는 표현이 자칫 변협이 공인 인증기관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이를 ‘충족’과 ‘미충족’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이는 의학교육평가원의 평가 결과가 행정 조치로 이어지는 의대와는 다른 구조다. 교육계에서는 변협의 평가가 로스쿨의 평판에 일정한 영향을 줄 수는 있으나 행정적 조치와 연계되지 않는 이상 교육 개선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변협이 행정 권한 없이 평가만 수행하는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와 함께 평가 기준이 현장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홍대식 서강대 로스쿨 원장은 “디지털 시대에도 도서관 장서 수나 전임 교원 수 같은 형식적 기준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어 유연한 교육 운영을 어렵게 만든다”며 “일부 항목이 미비하다는 이유만으로 전체를 미흡 판정하는 경직된 평가 방식 역시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평가위원회 구성과 운영 절차도 공정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현재 평가위원회는 로스쿨 교수, 언론인, 법무부·교육부·법원 관계자 등 11명으로 구성되며 위원장은 대한변협 회장이 직접 지명한다. 평가 절차 전반도 변협이 주도한다. 외부 비법조인 위원 3명을 모두 유력 언론사 기자로 구성한 데 대해 일각에서는 “언론 대응을 고려한 인선”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은 변호사단체와 국공립·사립대학 단체가 공동으로 로스쿨 평가를 수행하고 미국은 변호사협회 산하의 독립기구가 이를 맡고 있다. 학계에서는 이런 해외 사례를 참고해 국내도 교육부·변협·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평가 체계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교육부도 매년 로스쿨 이행 점검을 실시하고 있지만 교육과정이나 학사 운영의 내실을 면밀히 들여다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교육부의 이행 점검은 주로 인가 취소 등 중대한 조치로 이어질 수 있는 사안 위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각 대학의 특성화 목표나 선택과목 운영, 과목 다양성 등은 세밀하게 들여다보지 않는다. 실제로 시정 조치로 이어진 사례는 2021년 부산대 1건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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