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넷플릭스 등 해외 빅테크와의 망 사용료 갈등이 한미 간 통상 마찰로 번질 우려가 커졌다. 미국 정부가 상호관세 부과를 앞두고 망 사용료를 포함해 국내 입법이 추진 중인 빅테크 규제들을 자국 기업에 불리한 ‘무역장벽’으로 꼽으면서다. 이에 주무부처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우선 빅테크 규제보다 한미 관계 개선에 주력해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유상임 과기정통부 장관은 1일 망 사용료 문제 등을 지적한 미국의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NTE)’ 발표 직후 서울경제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유럽연합(EU)처럼 정부가 나서서 (강하게 빅테크를) 제재해서는 안 된다”며 “우리 측 피해만 생각해서는 안 되고 이득도 상당할 것이기 때문에 빅테크와 상호 공존할 길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EU에 이어 한국도 빅테크에 맞서는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해 국회에서 ‘망 무임승차 방지법’, ‘온라인플랫폼법(온플법)’ 등이 논의 중이지만 한미 갈등의 씨앗이 되자 주무부처 장관이 나서서 규제에 대한 속도조절 필요성을 시사한 것이다. EU는 포괄적 빅테크 규제인 디지털시장법(DMA)에 이어 망 사용료 규제를 포함하는 디지털네트워크법(DNA)을 추진하며 미국과 갈등을 키우고 있다.
통신업계에서도 통상 마찰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망 사용료를 무역장벽이라고 선언한 이상 우리 법 통과도 더 어려워질 것”며 “미국의 파워게임(힘겨루기) 양상으로 가버린다면 30년이 지나도 망 사용료를 못 받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이슈와 겹쳐 정부와 국회 차원의 대응도 당분간 쉽지 않을 거라는 게 업계의 반응이다. 망 무임승차 방지법은 21대에 이어 이번 22대 국회에서도 발의됐지만 통상 마찰 우려 등으로 계류 중이다.
망 사용료는 SK브로드밴드·KT·LG유플러스 등 망 제공 사업자(ISP)와 구글·넷플릭스 등 콘텐츠 제공 사업자(CP) 간 오랜 갈등의 쟁점이다. 유튜브·넷플릭스 등 동영상 스트리밍(실시간 재생) 서비스의 성장으로 망을 오가는 트래픽이 급증하자 ISP는 망 투자 비용을 ‘원인 제공자’인 CP가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하루 평균 트래픽 비중은 구글 30.55%, 넷플릭스 6.94%, 메타 5.06%으로 빅테크 3사(42.6%)가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ISP 입장에서는 빅테크당 연간 수천억 원, 조(兆) 단위의 연매출이 달린 사안이다.
반면 CP는 ISP가 이미 이용자에게 통신료를 받고 있으며 망 사용료 부과가 인터넷상 모든 데이터의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망 중립성 원칙에 위배된다며 맞서고 있다.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가 소송까지 갔다가 인터넷(IP)TV 콘텐츠 제휴로 상호 합의하는 등 개별 사업자 간 협상 사례는 있지만 정부 차원의 망 사용료 규정은 아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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