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 국가를 상대로 관세전쟁의 불을 당기면서 정책금융의 중요성이 급격히 커지고 있다. 한국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 IBK기업은행 같은 주요 정책금융기관을 총동원해 무역금융과 수출기업 대출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시중은행이 자동차 부품과 철강 등 핵심 산업에 대한 여신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도록 금융감독 당국이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을 지낸 임채운 서강대 경영대학 명예교수는 3일 “트럼프 행정부가 정책금융 확대를 비관세장벽으로 거론하며 견제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국내 사정을 보면 정책금융 확대 필요성이 크다”고 밝혔다.
통상 업계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부과로 세계무역기구(WTO)나 자유무역 체제가 끝났다고 보고 있다. 미국이 관세를 앞세워 보호무역을 강화하는 만큼 한국도 민관 차원에서 기업을 도울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특히 정책금융기관의 저리 대출과 보증, 여신 만기 연장은 미국이나 유럽연합(EU)도 크게 문제 삼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재정 건전성을 고려하면 금융 확대를 통한 대출 지원이 절실하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미국과 EU, 일본 등은 반도체와 인공지능(AI)에 천문학적인 보조금과 대출을 제공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 11월 AI와 반도체에 2030년까지 10조 엔(약 99조 원) 규모의 금융 지원과 보조금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EU는 AI 산업 육성을 위해 총 2000억 유로(약 320조 원) 규모의 민간·공공 자본을 지원할 계획이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 연구위원은 “보조금 정책에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EU에서도 적용 범위가 넓은 산업 정책에는 큰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책금융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올해 정책금융기관을 통해 247조 5000억 원을 공급하기로 했다. 전년보다 2.9% 늘어난 것으로 명목 경제성장률 예상치(3.8%)에도 못 미친다. 트럼프발 관세전쟁에 경기가 더 가라앉고 수출이 급감하면 정책금융의 역할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수출 중소기업은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높아 공금융의 필요성이 절대적이다. 이를 고려하면 정부가 민간 금융권과 함께 100조 원 규모로 조성하기로 한 첨단전략산업기금 설치를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다음 주에 나올 정부 차원의 자동차 산업 대책이나 향후 추가경정예산 논의에 정책금융기관 증자를 포함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송 선임 연구위원은 “수은은 국내 수출금융에서 큰 역할을 하기 때문에 자본 규모 확대를 긍정 검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민간 금융사들이 무역금융과 중소기업 여신을 늘리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기업대출 잔액은 825조 2094억 원으로 전월보다 약 2조 5000억 원 감소했다. 신한금융그룹만 해도 글로벌 무역전쟁 확대에 자동차 부품과 유통산업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정책금융기관의 보증을 확대해 시중은행들의 중기 대출 위험을 줄이는 쪽으로 접근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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