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전광훈은 한남동으로 왜 가냐고. 헌법재판소 앞을 지켜야지.”
지난 4일 오전 11시 22분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윤 전 대통령을 파면한다고 선고하자 안국역 인근에 산발적으로 모여 축제를 벌이던 보수단체 집회 현장은 순식간에 분노로 휩싸였다. 문 대행이 야당의 국정마비 등을 언급할 때까지만 해도 박수를 치던 지지자들은 점차 불리한 판단이 나오자 손에 든 ‘이재명 구속’, ‘윤석열 복귀’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바닥에 내동댕이 치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곳곳에서는 “이게 나라냐”, “공산당에게 나라가 넘어갔다” 등 고성이 터져 나왔고, 헌재를 가로막고 있는 경찰을 향해 울분이 섞인 욕설을 뱉는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도 있었다.
한 여성은 선고가 나오자마자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했다. 다른 여성은 바닥에 드러누워 “이제 어떻게 살아”라고 울음을 터뜨렸다. 허공을 응시하며 두 손을 모으고 연신 “주여”라고 중얼거리며 기도를 하는 여성도 있었다. 한 남성은 해당 장면을 촬영하던 취재진들에게 플라스틱 의자를 집어던지는 시늉을 하며 “찍지 말라”고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 몇몇 지지자들은 “헌재 앞으로 가 저항하자”며 다른 집회 참석자들을 독려했지만 애초에 헌재 앞에 모인 인원이 적었던 탓에 호응은 미미했다.
선고 직후 진보단체와 헌재를 향하던 보수단체의 분노는 이내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이끌고 있는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대국본) 등으로 향했다. 헌재로 향해 선고에 불만을 표출해야 하는데 한남동 대통령실 관저 앞으로 집회 장소를 바꿔 제대로 된 저항을 하지 못하게 됐다는 이유다.
안국역 집회 현장에 있던 한 남성은 “도대체 한남동으로 간 이유를 모르겠다. 이 곳에 화력을 집중해도 모자른데 한남동에서 쓸데 없이 노래를 틀고 축제를 벌이고 있지 않느냐”며 “전광훈은 탄핵이 될 줄 알고 있었던 것 같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다른 남성은 대국본과 자유통일당 등이 오는 5일 광화문에서 집회를 한다고 공지하자 “전광훈 무리는 할 줄 아는 것이 노래자랑밖에 없고 정작 진정한 저항은 피하는 겁쟁이다”며 “한남동에서 헛소리를 늘어놓는 무리나 대통령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국민의힘이나 모두 똑같은 것들”이라며 고성을 질렀다. 몇몇 지지자들은 오는 주말 광화문에서 열리는 전 목사 위주의 집회가 아닌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를 주축으로 하는 세이브코리아의 여의도 집회로 가자고 외치기도 했다.
다만 일부 지지자들은 “그래도 전광훈 목사가 화력을 집중시킬 수 있다”, “분탕질 하지 마라”며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현장에서 ‘전광훈 책임론’을 주장하는 지지자들과 말싸움을 벌인 한 남성은 “이럴 때일수록 보수가 하나로 모여 좌파 진영에 대응해야 한다”며 “전 목사를 욕하는 세력은 보수를 쪼개려는 사실상의 프락치”라고 반박했다.
헌재 인근에 모인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분통을 터뜨리다 탄핵 선고 30여분이 지나자 각자 뿔뿔이 흩어졌다. 이 과정에서 한 남성은 곤봉으로 안국역 5번출구 인근에 주차된 경찰 버스의 창문을 내리쳐 손상시킨 혐의로 현행범 체포되기도 했다.
한편 이날 한남동 집회 현장에 간 전광훈은 서부지법 폭동 사태를 촉발한 ‘국민저항권’을 언급하며 이달 5일 오후 1시광화문에서 3000만 명이 모이는 집회를 개최한다고 말했다. 집회 신고 인원은 20만 명이다. 세이브코리아 또한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신고 인원 2만 명 규모의 집회를 연다고 밝혔다. 다만 세이브코리아는 탄핵 인용 직후 유튜브 방송을 통해 더이상 집회를 진행하지 않는다고 전한 바 있다. 진보단체인 퇴진비상행동 또한 5일 오후 4시부터 동십자각 인근에서 집회를 진행한다.
윤 전 대통령 탄핵이 인용된 후에도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각 단체가 잇따른 주말 집회를 예고한 만큼 당분간 주말 서울의 교통상황은 혼잡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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