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경제·금융을 책임지는 수장들이 이틀 연속 거시경제·금융현안간담회(F4 회의)를 열고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선고와 미국 상호관세 부과 조치의 시장 영향을 점검했다. 비상계엄 직후인 지난해 12월을 제외하고 F4 회의가 일주일에 두 차례 이상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참석자들은 전날 정부가 제안한 10조 원 규모의 필수 추경을 국회가 조속히 처리해줄 것을 요구하면서 만약 금융·외환시장에서 불안 조짐이 나타날 경우 가용한 모든 조치를 펼쳐 나가기로 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윤 대통령의 파면 결정이 이뤄진 직후 F4회의를 긴급 소집해 금융외환시장을 점검했다. 이날 회의에는 F4 멤버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와 김병환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이 참석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 조치, 헌재의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에 따른 금융·외환시장 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 하고 향후 상황별 대응 계획에 따라 가용한 시장 안정조치를 시행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최 부총리가 이틀 연속 F4 회의를 주재하면서 추경 규모 확대 등 정부의 재정 확대 방안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F4 회의는 주로 금융·외환시장 동향을 점검하는 자리지만 거시경제와 통상 등 최근 경제 현안들도 폭넓게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재정과 통화, 금융, 외환 시장을 이끄는 수장들이 한자리에 모이기 때문에 논의 주제에 제한이 없고 의사 결정의 속도도 빠르다”며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며 정책 방향을 잡아 가는데도 F4 회의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실제 최 부총리는 전날 회의에서도 “높은 상호관세 부과가 현실로 다가온 이상, 본격적인 대응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F4 회의도 여기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가 제안한 10조 원 규모의 ‘필수추경’에도 무역금융, 수출바우처 추가 공급, 핵심 품목 공급망 안정 등 통상 리스크 대응 사업을 적극 반영하겠다”며 “기업들이 전례 없는 통상 파고를 헤쳐나갈 수 있도록 국회에서 신속히 논의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현시점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대목은 정부가 추경 규모를 늘릴지 여부다. 기재부는 지난달 30일 10조 원 규모의 추경 편성을 공식화했다. 재난·재해 대응과 인공지능(AI) 경쟁력 강화, 민생 지원 등 3대 분야에만 집중한 것이 특징이다. 정쟁을 뛰어 넘어 국민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재정만 선별적으로 추려내 빠르게 추진하자는 취지다. 이 가운데 AI 경쟁력 강화, 민생 지원 등은 2월 여야정 국정협의체에서 여야가 추경의 큰 원칙으로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규모 면에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35조 원)은 물론 여당인 국민의 힘(15조 원)의 추경안보다 작다. 윤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조기 대선 국면에 돌입함에 따라 여당이 당초 정부안보다 민생 분야의 지원을 늘려달라고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통상과 내수 진작을 위해 조기 추경을 하려면 산불 피해 복구 예산을 제외하고 최소 15조 원 이상이 돼야 효과가 있다”며 “심사권을 쥔 여야가 논의의 시작점으로 삼기에는 정부가 제안한 10조 원은 적다”고 말했다.
해외 신용평가기관들을 대상으로 한국 국가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것이라는 메시지도 던졌다. 윤 전 대통령 파면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상당히 해소되기는 했지만 당분간 국가 전반에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게 신평사들의 우려다.
최 부총리는 이날 주요 신평사들과 주요국 재무장관, 주요 국제기구 및 글로벌 투자은행(IB) 등을 대상으로 서한을 발송해 “한국의 국가 시스템은 헌법과 법률 시스템에 의해 질서 있는 방식으로 운영될 것이며 앞으로 우리 경제를 최대한 안정적으로 관리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그동안 많은 위기와 도전에 직면했으나 그때마다 시스템이 성숙해지는 계기가 됐다는 게 최 부총리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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