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행을 다녀오면 위스키를 사오시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개인 소비를 위한 목적도 있지만 일부는 장기적인 가격 상승을 노리고 투자 목적으로 구입하는 경우도 많은데요. 최근 가격 상승과 위스키 소비 둔화 등 여러 이유로 거품이 빠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오랫동안 급등하던 일본 위스키의 유통 가격이 진정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2024년 중반까지 가파르게 올랐던 일본 위스키 가격은 현재 고점 대비 15~20% 가격이 떨어진 상태입니다. 주요 품목 별로 살펴보면, 지난해 초 약 14만 8000엔(약 145만 6000원) 가량에 팔리던 산토리의 '야마자키 18년'은 연말께 12만 800엔(118만 8000원)으로 가격이 내렸습니다. '하쿠슈 12년'도 같은 기간 3만 3800엔(33만 2000원)에서 2만 2800엔(22만 4000원)으로 떨어졌습니다.
도쿄 신주쿠에 위치한 한 주류유통점의 기무라 켄이치 직영본부장은 "가치가 높은 '야마자키 25년'은 피크 때인 2023년 130만 엔의 웃돈이 붙었지만 지금은 100만 엔 수준"이라고 전했습니다.
일본 위스키 몸값이 급등한 것은 2010년대 중반부터입니다. 글로벌 위스키 시장이 본격 개화한 가운데 해외에서 일본 위스키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공급이 부족해졌지요. 위스키는 장기간 증류와 숙성이 필요한데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원액 제조 속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한 겁니다. 2011년 산토리가 150병 한정으로 100만 엔(약 1100만 원)에 판매한 '야마자키 50년'은 2018년 소더비홍콩경매소에서 233만 7000홍콩 달러(약 3억 5700만 원)에 낙찰되면서 아시아 최고가를 갈아치웠고, 뒤이어 2022년에는 3300만 원에 판매됐던 '야마자키 55년'이 약 11억 7000만 원에 낙찰되는 등 가격이 크게 불어났습니다. 특히 위스키는 증류주인 만큼 온도나 습도의 영향을 받지 않아 장기 보유가 가능한 만큼 투자가 용이한 자산으로 주목을 받았지요.
위스키 제조사의 가격 인상도 투기 열기를 부추겼습니다. 산토리는 2024년 4월 프리미엄 위스키의 소매 가격을 크게 인상했는데요. '히비키 30년', '야마자키 25년', '하쿠슈 25년' 등이 16만 엔에서 36만 엔으로 두 배 이상 올랐습니다. 시장 가격이 계속해서 오르는 가운데 제조사의 판매 가격까지 상승하면서 앞으로도 위스키 가격이 계속해서 오를 것이라고 생각한 추격 매수세도 따라 붙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같은 가격 상승세는 지난해 중순부터 확 꺾였습니다. 일본 주류유통사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중국의 경기 침체'를 배경으로 꼽고 있는데요. 주류 2차 유통사 바이셀 관계자는 "중국을 주요 유통처로 두었던 바이어들로부터 '예전처럼 가격에 사기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며 "유럽과 동남아시아로의 유통은 증가했으나, 중국의 감소폭을 메꾸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실제로 일본 재무성의 무역 통계에 따르면 일본 위스키의 해외 수출 금액은 2020년 271억 엔, 2021년 461억 엔, 2022년 560억 엔으로 급격하게 증가했다가 2023년 500억 엔, 2024년 1~11월에는 전년 동기 대비 13%나 떨어진 약 430억 엔을 기록했습니다. 수출량은 매월 100만 리터 전후로 변동이 없는 만큼 위스키 판매 단가가 하락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수요가 감소한 가운데 공급은 늘어날 전망입니다. 산토리는 2013년 이후 700억 엔 가량을 투입해 제조 능력을 확장했고 저장 능력도 2013년부터 10년 동안 60% 이상 늘렸습니다. 일본 위스키 시장이 커지면서 증류소도 연간 30곳 가까이 새로 생겨났는데요. 위스키는 증류 후 최소 3년을 숙성해야 하는 만큼 추후 유통 가격이 하락하면 신규 사업자들은 투자 자금을 회수할 수 없어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본 위스키, 100년의 여행'을 쓴 김대영 작가는 "세계적인 위스키 소비 감소가 일본 위스키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앞으로 웃돈을 치러야 살 수 있던 일본 위스키를 정가에 살 수 있는 날도 멀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을 내놨습니다.
다만 이같은 하락 추세가 곧 주춤할 것이라는 기대도 일각에서 나옵니다. 산토리가 일반 위스키 가격을 서서히 인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주식 대신 현물로 시장의 투자 자금이 이동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닛케이는 한 주류감정사를 인용해 "주식시장이 불안정해지면 자금은 술이나 시계 등 현물로 향한다"며 "중국의 경제 회복 전망이나 버블 재과열은 어려운 국면이지만 위스키 가격이 계속 하락할지는 미지수"라고 진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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