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들이 미국의 고율 관세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관세 압박을 줄이기 위해 미국 내 생산량을 늘리거나 제품 가격을 인상하는 방안을 모색하면서 공급망 혼란에 대응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6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닛산자동차가 일본 규슈 후쿠오카현 공장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던 SUV ‘로그’의 생산을 미국 현지로 일부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으로 수출할 때 적용되는 높은 관세를 면제받기 위해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이달 3일 오전 0시 1분부터 미국 밖에서 생산된 모든 자동차에 대해 25% 관세를 예외 없이 부과하고 있다.
닛산은 지난해 미국에서 약 92만 대의 차를 판매했는데 이 가운데 16%에 해당하는 15만 대를 일본에서 만들어 수출했다. 연간 물량의 상당 부분이 폭탄 관세 부과 대상이 된 것이다. 닛산은 이달 예정했던 미국 내 감산 계획도 일부 철회하고 오히려 생산량을 늘리기로 했다. 반면 멕시코에서 생산하던 QX50과 QX55 등 SUV 2종은 미국 시장 판매 중단을 결정했다.
유럽 자동차 업계는 늘어난 관세 부담을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자동차 산업은 부품과 원자재 등 수입 의존도가 높아 고율 관세가 부과되면 제조 비용이 크게 상승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페라리는 지난달 27일 관세 발효 이후 미국에 수출하는 모든 차량 가격을 최대 10% 인상한다고 일찌감치 밝혔다. 독일 폭스바겐도 2일 자동차 관세 부과 영향을 받는 모든 수출 차량에 일정 부분의 ‘수입 수수료’를 반영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영국 오프로드 자동차 전문 브랜드인 이네오스는 미국에 판매하는 자사 모델 2종의 가격을 각각 5%와 10% 인상할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중장기 전략 수립을 위해 대미 사업에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곳도 있다. 영국 자동차 제조업체인 재규어랜드로버(JLR)는 최근 미국으로의 모든 자동차 선적을 중단했다. JLR은 “사업 파트너들과 함께 새로운 무역 조건에 대응할 방법을 모색 중”이라며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는 동안 단기 조치로 4월 한 달간 자동차 출하 중단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아우디 역시 관세 발효 이후 사업 방향을 명확히 하기 전까지 수출 물량을 일단 항구에 묶어둔 상태다. 크라이슬러·지프 등을 생산하는 스텔란티스는 캐나다와 멕시코에서 자동차 생산을 일시 중단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 내 조립 공장 5곳의 근로자 900명이 일시 해고되기도 했다.
아시아 국가에 생산 물량 대부분을 의존하는 소매 업체들도 고심에 빠졌다. 베트남(46%), 태국(36%) 등 의류 생산 공장이 대거 위치한 아시아 국가의 관세율이 크게 조정됐기 때문이다. 미국 의류 업체 게스는 관세 발표 이후 아시아 지역의 공급 업체를 라틴아메리카 지역으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스포츠 용품 기업인 푸마도 “다국적 원산지 전략이 있으며, 공급 업체 다수가 여러 다른 국가에서 생산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미국의 싱크탱크 글로벌개발센터(CGD)의 찰스 케니 연구원은 “중국의 공장들은 이미 베트남으로 이전했고, 다음 장소는 관세가 상대적으로 낮은 인도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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