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034730)그룹이 8일 창립 72주년을 맞는다. 직물 회사에서 시작한 SK는 에너지·정보통신기술(ICT)·바이오·반도체 사업 경쟁력을 발판으로 최태원 회장 지휘 아래 인공지능(AI) 기업으로의 변신을 가속화하고 있다. SK가 4차 혁신 창업을 통해 성장해온 역사를 넘어 새로운 ‘퀀텀 점프(대도약)’를 시도해 주목된다.
◇섬유에서 에너지·화학, 정보통신으로=SK는 6·25전쟁이 끝난 1953년 최종건 창업회장이 공장을 불하받아 선경직물(현 SK네트웍스(001740))을 창업하며 출발했다. 최 창업회장은 ‘품질 제일주의’를 앞세워 1955년 ‘닭표 안감’과 ‘봉황새 이불감’을 출시했고 1962년 홍콩에 닭표 인조견 10만 마(당시 약 1만 3000달러)를 수출, 한국을 ‘직물 수출국’ 반열에 올려놓았다. 선경직물은 아세테이트와 폴리에스터 공장을 잇달아 건설해 1970년대까지 섬유 산업을 이끌었다.
SK는 1980년 대한석유공사(현 SK이노베이션(096770))를 인수하며 두 번째 창업을 이뤘다. 최 창업회장의 친동생인 최종현 선대회장은 석유화학에서 섬유까지 일괄 생산 체제 구축에 정유사를 추가하며 중화학 산업의 주춧돌을 놓았다. 1984년 예멘의 마리브 광구에서 유전 개발에도 처음 성공해 ‘무자원 산유국’ 신화를 일구기도 했다.
최 선대회장은 이어 신성장 동력으로 정보통신을 낙점, SK는 1992년 제2이동통신 민간사업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사돈 관계인 SK에 특혜를 제공했다는 논란이 일자 최 선대회장은 “특혜 시비를 받으며 사업을 할 수 없다”며 사업권을 반납했다. SK는 1994년 김영삼 정부 때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017670))을 인수해 숙원을 풀었고 1996년 세계 최초로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디지털 이동전화를 상용화해 국내 최대 통신 업체를 키워냈다.
◇반도체 기업으로 글로벌 도약=2011년 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000660)) 인수는 선경직물·유공·한국이동통신에 이은 SK의 네 번째 혁신 창업의 역사다. 국내 대기업집단의 성격이 강했던 SK는 이때부터 글로벌 기업으로 올라선다. 최 회장은 채권단 관리를 받던 하이닉스에 3조 4267억 원을 투자해 인수 1년 만에 분기 흑자 전환을 이뤘다. 2017년 낸드 전문 기업인 키옥시아(옛 도시바메모리)에 4조 원 규모 지분 투자를 단행했고 2020년 인텔 낸드사업부를 11조 원에 인수하면서 SK를 메모리반도체 분야 선두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특히 AI 시대 핵심 반도체로 불리는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성공은 ‘뚝심 투자’가 빛을 발한 성과로 꼽힌다. 2012년 메모리 업황 부진에 경쟁사들이 투자를 줄일 때도 SK는 매년 조 단위 연구개발(R&D) 비용을 투입했는데 이 같은 미래 투자가 HBM 기술력으로 이어졌다.
SK하이닉스가 일찌감치 개발해놓은 HBM은 생성형 AI와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만나 이른바 ‘대박’이 났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등 고객사는 물론 파운드리 강자인 대만 TSMC 등과 파트너십을 공고히 해 AI 반도체에서 독보적 입지를 구축했다. 지난해 SK하이닉스는 그룹 편입 직전인 2011년보다 매출이 6배 늘어난 66조 2000억 원을 기록했다.
◇AI 데이터센터, 5차 혁신 창업의 주춧돌=최 회장은 AI를 리딩하는 SK로 5차 혁신 창업에 착수했다. 특히 SK가 보유한 사업군을 활용한 미래 사업으로 AI 데이터센터를 지목했다. AI 데이터센터는 GPU 등으로 구성된 서버를 다량 구축해 AI 머신러닝과 생성형 AI 서비스를 24시간 제공한다.
최 회장은 AI 데이터센터 건축(SK에코플랜트)과 서버 구축에 필요한 반도체(SK하이닉스), 전력(SK이노베이션), 통신망(SK텔레콤·SK브로드밴드)은 물론 서버 운영(SK C&C) 역량을 총망라해 AI 종합 솔루션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비전을 창립 72주년을 맞아 강조할 계획이다. 그는 엔비디아·마이크로소프트(MS)·TSMC 등과 AI 데이터센터 사업 협력 방안도 논의 중이다. SK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2월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5’에서도 슈나이더일렉트릭·기가컴퓨팅 등 국내외 기업들과 AI 데이터센터의 기계·전력·수배전(MEP), 액체냉각 분야에서 협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SK그룹은 GPU 6만 장이 투입된 100㎿(메가와트)급 하이퍼스케일로 서버 10만 대를 동시 가동할 수 있는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할 계획이다. SK 고위 관계자는 “향후 규모를 1GW(기가와트)로 확대해 AI 분야의 아시아 허브로 거듭나려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