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당시 북한 피난민으로 구성된 미군 특수부대에서 활동했던 김인수(사진) 씨가 별세했다.
5일(현지 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록빌시 부고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달 31일 타계했다. 향년 92세.
평양 태생으로 기독교인인 그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공산당의 종교 탄압을 피해 몸을 숨겼고 1950년 10월 평양을 탈환한 유엔(UN)군에 합류했다.
김 씨는 UN군의 후퇴로 남쪽으로 피란했다가 1951년 미8군 제8240 부대에 입대했다. 그는 국군이 아닌 미군 소속이었고 미군 공식 문건은 김 씨 같은 이들을 ‘북한 유격대(North Korean Partisan)’로 지칭했다. 이들은 북한과 가까운 동·서해안 섬을 기지로 삼아 적진에 침투해 첩보 수집, 보급로 타격, 포로 구출 등 특수작전을 수행했다.
8240부대는 켈로(KLO)부대로 한국에서 알려지기도 했지만 김 씨는 자신이 KLO가 아닌 TLO(Tactical Liaison Office) 소속으로 전술 정보 수집이 주 임무였다고 생전 설명했다. 그는 생전 국내 언론과 인터뷰에서 “난 죽이는 게 싫어서 사람을 직접 쏘고 그런 것은 없었다”며 “그러나 내가 제공한 정보 때문에 많은 사람이 포로로 있던 적진에서 나올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뒤 8240부대원들은 한국군으로 배속됐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북한 출신으로 미군에서 활동한 그들에 대한 정보가 없었고 미군은 8240부대의 활동을 수십 년간 비밀에 부쳤기 때문에 부대원들은 어디에서도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다가 정전 후 약 60년이 지나서야 양국에서 이들의 공로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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