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비엘바이오(298380)가 K바이오 사상 두 번째로 큰 ‘빅딜’에 성공한 것은 퇴행성 뇌질환 시장이 커지면서 뇌혈관장벽(BBB) 투과 기술의 가치가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고령화로 알츠하이머병 등 퇴행성 뇌질환 치료 수요는 커지고 있지만 약물이 신체의 방어 장치인 BBB를 뚫지 못해 약효가 떨어지거나 부작용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에이비엘바이오의 ‘그랩바디-B’ 플랫폼은 약물이 뇌혈관장벽을 뚫고 뇌에 효과적으로 전달되도록 한다. 특히 다양한 약물을 발굴할 수 있는 플랫폼 기술인 만큼 앞으로 확장 가능성도 크다.
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는 7일 서울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이번 계약의 가장 큰 의미는 에이비엘바이오 최초의 플랫폼 수출이라는 점”이라며 “BBB 투과 기술은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 개발에 반드시 필요한 필수 기술로 그랩바디-B 사업 확장의 시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계약으로 빅파마의 수요가 증명된 만큼 앞으로 추가 계약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덧붙였다.
그랩바디-B 플랫폼은 약물이 뇌혈관장벽을 넘어 뇌로 전달되도록 돕는 기술이다. 노폐물 출입을 막아 중추신경계를 보호하는 뇌혈관장벽은 약물 진입까지 차단해 뇌질환 치료에 걸림돌이 된다. 그랩바디-B는 BBB 막에 존재하는 인슐린 유사 성장 인자 1 수용체(IGF1R) 단백질을 타깃하는 셔틀(운반)용 항체를 합성해 약물의 운반 효율을 높인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과 에이비엘바이오는 이 기술을 활용해 짧은간섭RNA(siRNA), 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 또는 폴리뉴클레오타이드, 항체 등을 기반으로 다양한 표적의 치료제를 개발하기로 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계약이 BBB 투과 기술에 대한 빅파마들의 높은 관심을 입증했다고 보고있다.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 개발에서 BBB를 뚫는 것은 가장 큰 난관 중 하나로 꼽혀왔기 때문이다. 기존 단일항체 기반의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 ‘아두카누맙’의 후속 개발이 중단되고, 유럽의약품청(EMA)이 ‘레카네맙(레켐비)’와 ‘도나네맙(키순라)’ 승인을 거절한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 빅파마들은 이같은 기술장벽을 넘기위해 과감한 투자를 하고 있다. 실제 애브비는 지난해 BBB 투과 플랫폼을 보유한 바이오 기업 알리아다테라퓨틱스를 14억 달러(약 2조 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사노피는 에이비엘바이오의 그랩바디-B 플랫폼 기술을 적용한 물질 ‘ABL301’을 기술도입해 임상 2상 진입을 앞두고 있다.
에이비엘바이오 입장에서는 처음으로 플랫폼 기반 계약을 체결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 에이비엘바이오 관계자는 “IGF1R 기반 뇌혈관장벽 투과 기술로는 글로벌 최초의 플랫폼 기술이전”이라며 “플랫폼 기술이전인 만큼 무한한 확장성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알츠하이머병·파킨슨병 등 다양한 퇴행성 뇌질환으로 기술을 확장할 수 있다는 의미다. 플랫폼 기술인 만큼 다른 약물 개발에도 적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빅파마와의 추가 계약도 이뤄질 수 있다.
신약 플랫폼 기술이전은 범용성이 높아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신약 후보물질은 하나의 적응증으로 높은 수익과 기술이전 성과를 올릴 수 있지만 그만큼 실패 확률도 높다. 반면 플랫폼 기술은 다양한 물질을 발굴하거나 기존 물질을 개선하기 때문에 여러 기업들과 계약을 맺을 수도 있고 꾸준한 수익도 보장해준다. 현재 코스닥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알테오젠(196170)이 정맥주사(IV) 제형을 피하주사(SC) 제형으로 바꿔주는 플랫폼 기술로 미국머크(MSD), 다이이찌산쿄 등 빅파마와 잇따라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고 리가켐바이오(141080) 또한 항체약물접합체(ADC) 플랫폼 ‘콘쥬올’을 기반으로 매년 기술수출 성과를 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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