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코스닥 시장이 모두 5% 넘게 급락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전쟁’ 현실화에 따른 우려로 외국인투자가들이 앞다퉈 자금 회수에 나섰기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의 강경한 상호관세 부과 입장에 따른 중국의 맞불 보복관세 조치로 무역 전쟁 불안감이 최고조로 치달으면서 국내 증시를 포함해 글로벌 증시의 변동 폭을 더 키웠다. 특히 반도체 산업에 부과되는 품목별 관세까지 예고된 상황이어서 2021년 코로나 팬데믹과 지난해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발 공포를 넘어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으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자칫 금융시장의 시스템 리스크로 번질 수 있다는 불안감도 퍼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 경기 침체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유예 조치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단기 변수로 꼽았다.
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5.57%(137.22포인트) 급락한 2328.20에 장을 마쳤다. 종가 기준 2023년 11월 1일(2301.56)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하루 새 코스피 시가총액은 112조 원 증발했다. 거래소는 코스피 시작 12분 만에 코스피200선물지수가 5.19% 급락하자 매도 사이드카를 발동했다. 매도 사이드카는 코스피200선물지수의 가격이 1분간 5% 이상 하락할 때 프로그램 매도 호가 효력을 5분간 정지하는 프로그램이다.
외국인은 코스피에서만 총 2조 937억 원을 내던지면서 2021년 8월 13일(2조 6989억 원) 이후 최대 순매도를 보였다. 역대 다섯 번째로 많은 규모다. 4월 들어서만 5거래일 만에 코스피에서 6조 4370억 원을 던졌다. 외국인은 코스피200선물 시장에서도 7934억 원을 팔아치웠다. 시가총액 상위 종목인 삼성전자(-5.17%), SK하이닉스(-9.55%), 현대차(-6.62%)가 급락했다. 현대차는 52주 신저가를 기록하는 등 증시 상장 종목 3분의 1이 연중 최저가를 기록했다.
코스닥도 전장보다 5.25%(36.09포인트) 떨어진 651.30에 거래를 마쳐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날 코스피 866개 종목, 코스닥은 1495개 종목이 하락했다.
국내 증시가 속절없이 가라앉은 데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폭탄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패닉셀’ 양상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부과 정책을 수정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자 4일(이하 현지 시간) 미국 3대 지수인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5.5%),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5.97%), 나스닥종합지수(-5.82%)는 모두 급락했다.
전문가들이 국내 증시 급락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고 분석한 배경도 이와 맞닿아 있다. 윤창용 신한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일명 ‘공포 지수’로 불리는 미국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의 변동성지수(VIX)가 4일 45.31까지 올라간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때를 제외하고는 1989년 이후 도달한 적 없는 수치”라며 “극단적 공포가 본격화돼 낙폭을 키워 글로벌 주식시장의 모든 변수 영향을 압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장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선물과 나스닥100 선물이 5% 이상 하락하는 점은 단기적인 시장 충격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비관론이 제기되는 이유다. 7일 미국 시장 움직임은 고스란히 8일 국내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다만 전문가들은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과 트럼프 정부의 ‘핀셋 반도체 관세 정책’에 따라 국내 증시 향방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애초 관세정책에 따른 불확실성과 경기 침체 우려에도 연준은 “당장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은 없다”며 ‘관망 모드’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경기 침체 가능성이 지금보다 훨씬 높아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면서 연준이 시장에 개입(파월 풋)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힘을 받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골드만삭스는 1년 내에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확률을 기존 35%에서 45%로 상향 조정했다. 연준이 금리를 내리면 패닉셀 공포를 낮추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진우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 국채금리가 급락한 배경은 관세 부과보다 이로 인한 경기 충격 효과가 더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재만 하나증권 리서치센터 글로벌투자분석실장은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면서 급락했던 미국 증시가 반등했던 만큼 이번에도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자동차 산업과 마찬가지로 품목별 관세 부과 대상인 반도체 산업 관세율 역시 투자 심리를 압박할 수 있는 변수다. 이승훈 IBK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은 “상호관세가 부과되는 9일 전후로 주가 급등락이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시스템 리스크=금융 시스템 전체가 부실화되면서 실물경제에 충격을 줄 수 있는 위험을 의미한다. 개별 금융사의 손실이 다른 금융사의 손실로 확대·전이돼 큰 위험을 야기할 수 있다. 시스템 리스크를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면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 있어 대비가 필요하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