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이달 18일 퇴임하는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 후임으로 이완규 법제처장,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지명했다.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도 함께 임명됐다. 한 권한대행 측은 ‘대통령 사고(직무정지)’가 아닌 궐위 상태가 된 만큼 인사권 행사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신임 헌법재판관 후보 지명은 권한 밖”이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한 권한대행은 8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이 같은 인선안을 발표했다. 국회가 합의한 마용주 대법관 후보자 임명안도 재가됐다. 마 재판관은 9일 6년의 임기를 개시하고 이·함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새 정권 출범 전 임명된다.
한 권한대행은 “헌법 및 법률, 전례에 입각해 단행한 인사권 행사”라고 강조했다. 정부 관계자는 “공석인 헌법재판관들의 임명 필요성은 이전부터 제기됐으나 대통령이 직무정지 상태라 논의가 없었던 것”이라며 “이제 대통령 궐위 상태가 됐다”고 말했다. 이전까지는 직무정지 상태인 윤 전 대통령을 배려해왔으나 이제는 궐위 상태라 대통령의 인사권을 행사하는 게 자연스럽다는 의미다. 헌재법 제6조도 ‘재판관 결원 시 30일 이내에 후임자를 임명해야 한다’고도 명시하고 있다.
한 권한대행은 특히 국무위원 추가 탄핵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성이 컸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한 탄핵안이 언제든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될 수 있는 상태로 국회에 계류 중이라는 점, 경찰청장 탄핵 심판이 진행 중이라는 점을 고려했다”며 “결원 사태가 반복돼 헌재 결정이 지연될 경우 대선 관리, 필수 추경 준비, 통상 현안 대응 등에 심대한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한 권한대행이 이날 마 재판관도 임명해 일단 헌재는 9인 체제가 됐다. 하지만 19일부터는 문 재판관, 이 재판관이 빠져 7인 체제로 바뀐다. 이론적으로 헌재는 7인 체제로도 선고할 수는 있다. 그러나 탄핵 심판과 같은 중대 사건 처리에 난항을 겪을 수 있고 판결에 대한 정당성도 퇴색될 수 있다는 지적을 수용해 두 명(이완규·함상훈)의 재판관을 지명했다는 논리다. 총리실 관계자는 “통상 질서 격변기 속 최 경제부총리 탄핵소추안이 언제든 의결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완결체가 되지 않아 판결이 지연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 사태를 다시 만들 수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유례없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후보자 지명을 두고 정치권·법조계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새 정권 출범을 앞둔 시점에서 한 권한대행의 인사권 행사가 헌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당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대법원장 몫인 이선애 재판관은 임명했으나 대통령 몫인 박한철 헌재소장 후임자는 지명하지 않았다.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권한대행의 권한 행사는 현상 유지에 머물러야 한다는 게 학계 주류의 견해”라며 “위헌의 소지가 크다”고 밝혔다.
여야의 사법부 코드 인사가 다시 노골화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 후보자와 함 후보자는 각각 검사·판사 출신으로 높은 전문성을 인정 받는 이들이다. 하지만 이 후보자는 윤 전 대통령과의 오랜 친분이 잡음을 낳고 있다. 그는 윤 전 대통령과 서울대 법대 및 사법연수원 동기 관계로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출범과 동시에 법제처장에 발탁돼 근무하고 있다. 함 후보자는 중도 성향의 엘리트 법관으로 평가되나 ‘드루킹 댓글 여론 조작 사건’에서 김경수 전 경남지사에게 2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한 사례가 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마 재판관 임명 논란, 대통령 몫 재판관 지명 강행 모두 자기편 인사를 재판소에 심으려는 코드 인사의 전형”이라며 “재판소가 정치권 축소판으로 전락했다. 결과적으로 법치주의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함 후보자는 별도의 국회 의결 없이 임명이 가능하다. 국회 인사청문회는 거쳐야 하지만 재송부 시한을 지나면 한 권한대행 직권으로 임명할 수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 한 권한대행 재탄핵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으나 두 후보자 임명 행위의 효력까지는 부정할 수 없고 권한쟁의심판 역시 국회가 청구인 적격성을 인정받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회가 임명에 제동을 걸기는 쉽지 않다”며 “일반 국민이 ‘위법한 재판관으로부터는 헌법 심판을 받을 수 없다’는 헌법소원이나 위헌 심판 등은 제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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