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방위적인 관세 부과에 나선 가운데 주요국 간 경제 협력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부쩍 늘어나는 모양새다. 교역 파트너들과 긴밀한 공조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무분별한 관세 위협과 격화하는 미중 무역 갈등 정세에 대응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10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은 중국과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고율 관세를 폐기하는 협상을 시작할 방침이다. EU는 지난해 값싼 중국산 전기차가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며 관세율을 기존 10%에서 17.8~45.3%로 인상했다. 하지만 앞으로 관세 대신 중국이 수출 최저 가격을 설정하는 쪽으로 전환할지 여부를 논의해나간다는 것이다. 앞서 EU와 중국 당국은 중국산 전기차의 가격 약정에 관한 협상을 벌였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무산된 바 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공세가 거세지는 만큼 중국과의 협력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행보로 읽힌다.
EU와 중국 간 7월 정상회의 개최가 예정된 가운데 EU 지도부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하기 위해 베이징 방문을 계획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EU 정상들이 중국을 방문해 시 주석과 만남을 가질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EU는 제3국과의 협력도 늘려나가기로 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개시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양측은 상품·서비스·투자 부문의 ‘무역 자유화’에 중점을 두고 재생에너지, 녹색수소, 핵심 원자재와 같은 전략적 분야의 협력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영국도 주요국들과의 접점을 넓혀갈 예정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레이철 리브스 영국 재무장관은 최근 로이드뱅킹그룹, 하그리브스 랜스다운, M&G 등 금융기업 경영진들과 만나 EU를 비롯해 인도·한국·스위스 등과 ‘더 나은 무역 합의’를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영국은 특히 인도와 FTA를 추진 중이며 현재 양국은 90%가량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뉴질랜드·호주 등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회원국들도 자유무역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크리스토퍼 럭슨 뉴질랜드 총리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에 대해 “규칙 기반의 무역 시스템에 대한 가장 심각한 도전”이라면서 CPTPP와 EU가 협력해 자유무역 협정을 추진할 수 있다고 밝혔다. 럭슨 총리는 이어 팜민찐 베트남 총리, 로런스 웡 싱가포르 총리,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와 각각 전화 통화를 하고 규칙 기반의 자유무역 강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고 X(옛 트위터)에서 밝혔다. 이들 국가는 모두 CPTPP 회원국이다. 세계 경제에서 CPTPP 회원국의 비중은 약 15%에 이른다.
중남미 국가들도 결속력을 높이고 있다. 9일 온두라스 테구시갈파에서 열린 라틴아메리카·카리브 국가공동체(CELAC) 정상회의에서 중남미 정상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에 맞서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 CELAC는 2010년 설립된 중남미 최대 연합체다.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은 이번 행사에서 “역사는 우리에게 무역 전쟁에서 승자가 없다는 것을 가르쳐준다”며 “국제 경제를 불안정하게 만들며 물가를 상승시키는 관세와 강대국 간 분열의 한복판에 놓일 위험 앞에서 우리는 무관심을 버리고 단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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