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사모펀드(PEF)가 탄생 20주년을 기념해야 할 올해 MBK파트너스를 필두로 수난을 겪고 있다.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 기업회생을 신청하자 국민적 비난의 대상이 됐고 MBK가 밀어붙였던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동력을 잃고 있다. 국민연금에서 받은 돈을 투자해 국민 노후 자금과 기업의 가치를 키웠다는 PEF의 공도 ‘부채 경영’이 부각되며 빛이 바랬다.
많은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들은 “PEF가 재벌 무서운 줄 알았을 것”이라는 총평을 내놓았다. PEF가 아무리 현금과 투자 전문가가 많아도, 심지어 일부 PEF 창업자들은 재벌가의 사위이기도 하지만 재벌 오너 2~3세끼리의 결속력과 그들이 계열사를 통해 구축한 영향력을 무너뜨러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고려아연 분쟁도 초반에는 MBK가 명분을 쌓은 것처럼 보였지만 홈플러스 사태 이후 여론은 MBK로부터 돌아섰고 국민연금도 MBK 방식의 투자에는 돈을 내주지 않겠다며 선을 그었다. 부채 경영의 바탕을 깔아주던 은행들도 당분간 MBK의 투자에 돈을 빌려주지 않겠다며 손을 뗐다.
그러나 PEF의 위상이 흔들린다고 해서 오너 경영의 폐해를 한국 사회가 예전처럼 용인하지는 않을 것이다. 고려아연의 분쟁 과정에서 밑바닥을 보인 것은 MBK뿐만 아니라 기존 오너와 경영진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고려아연의 종업원, 주주, 거래 기업이 보기에 분쟁의 당사자들은 돈과 자존심을 건 ‘그들만의 싸움’만 벌이고 있다. 양측 편에 선 최고의 법률·금융 전문가들은 대주주 개인을 위해 끊임없이 순환출자와 지분 양도를 강행하고 불필요한 주주총회를 열려고 한다. 이는 전 세계 비철금속 제련 분야 1위라는 고려아연의 위상을 해치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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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뿐 아니라 많은 대기업 오너들이 오너 경영의 핵심인 ‘책임’에서 멀어지고 있다. 이들은 신사업을 추진할 때는 선봉에 서지만 결과가 안 좋을 때에는 자취를 감춘다. 회장의 관심 사항이라며 투자했던 친환경 계열사를 이제 모두 매물로 내놓은 한 대기업의 회장은 과거의 일은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책임은 임기가 1~2년에 불과한 계열사 대표와 주요 임원이 질 뿐이다. 한때 그 기업들이 실제로는 오너들이 선호해 뽑아갔던 PEF와 투자은행(IB) 출신들도 이제는 상당수 자리에서 물러났다.
PEF보다 먼저 행동주의펀드들은 오너 경영의 폐해를 문제 삼아 왔다. 비록 그들이 단기적인 이익만 노려서 한 주장이라도 그들이 근거로 든 ‘기업보다 오너를 위한 경영’의 문제점은 틀린 소리가 아니다. 오너 경영이 인정을 받으려면 PEF를 비판하는 데서 끝날 게 아니라 경영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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