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대법원은 서울특별시장이 서울시의회를 상대로 제기한 조례안 재의결 무효확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이 판결의 의미를 두고 공인회계사와 세무사 양 직역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쟁점은 서울시 민간 위탁 사업의 사업비 집행 적정성 검토 업무를 그간 공인회계사만 할 수 있었는데 세무사도 참여하도록 확대하는 내용의 개정 조례가 위법한지 여부였다.
조례의 위법성은 보통 법률유보원칙과 법률우위원칙의 두 측면에서 검토한다. 대법원은 먼저 법률유보원칙의 측면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이 민간 위탁 사업 비용의 집행이 적정했는지 검토하는 업무를 위탁한 후 이를 관리·감독하는 것은 ‘자치사무’라고 봤다. 즉 기관위임사무와 달리 자치사무는 주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새로운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아닌 이상 상위 법령에 근거하지 않아도 조례로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규율할 수 있는 영역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또 법률우위원칙의 측면에서 조례가 이미 존재하는 상위 법령의 내용에 반하거나 불일치하는 이른바 ‘초과조례’인 경우 위법해 무효인데 지방자치법령이나 훈령 등에서는 그 어디에도 지자체장이 사무를 민간 위탁한 경우 관리·감독을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에 관해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즉 지자체장이 민간 위탁한 경우 반드시 공인회계사법상 ‘회계에 관한 감사·증명’을 거쳐야 한다고 제한하는 법령이 없다는 것이다. 개정 조례안이 민간 위탁 사업의 사업비 결산서 검사 업무를 공인회계사에 국한하지 않고 세무사에게까지 확장한 입법 취지는 정당하다고 본 것이다.
여기서 다른 나라 입법 사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독일 세무사법에서 세무사는 납세자의 기장의무 이행을 지원하기 위해 결산서의 작성 등 업무를 보조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통해 민간 위탁 사업의 사업비 지출과 관련한 세금 낭비를 막을 수 있다. 또 납세자인 수탁기관의 성실한 납세를 유도함과 동시에 적정한 사업비 결산서 검토를 기초로 세금을 납부할 수 있어서 납세자 권익 보호에도 기여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사업비 결산서 검토를 공인회계사법에서 말하는 회계감사의 개념에 국한시킬 수 없고 세무사도 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확장하려는 개정조례의 입법취지는 정당하다는 것이 대법원 판결의 취지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이나 공인회계사법에 따라 회계사가 회계감사를 할 때에도 그 회사의 감사나 감사위원회와 협의만 되면 독립성이나 이해상충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전제로 회사의 세무조정과 같은 비감사업무를 함께 수행해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공인회계사와 세무사의 직역이 이처럼 유사한 영역에 걸쳐 있다 보니 각각의 업무 영역이 어디까지인지 불명확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세부 경계가 어떠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이정표가 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제는 앞으로의 서로의 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세무사의 직무 연수시 세무조정 외에도 결산서 검사와 관련한 전문성을 세무사들에게 지속적으로 교육할 필요가 있다. 공인회계사도 기존의 회계감사라는 전통적인 단어에 갇혀 있을 수만은 없다. 최근 특히 인공지능(AI) 기술이 발전하면서 숫자와 관련한 직업에는 향후 중대한 변화도 예견되고 있다. 새로운 디지털 시대에 어떠한 더 가치 있는 업무를 창출해 국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개발할 시기다. 공인회계사와 세무사로서의 직무의 공익성을 다시금 되새기고 보다 공공성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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