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가들에게 규제란 언제나 답답한 장벽처럼 보인다. 새로운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시장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규제는 불필요한 걸림돌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규제 당국의 시각은 다르다. 그들에게 혁신가는 마치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와 같다. 보호 장치 없이 시장에 뛰어든 혁신은 예상치 못한 사고를 불러올 수 있고 결국 사회적 반발을 초래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이처럼 혁신가와 규제 당국 사이의 시각차는 필연적이다. 하지만 이것이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규제는 시장 질서를 유지하고 소비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모든 규제가 합리적이거나 시대에 맞게 설계돼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규제들은 과거 산업구조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환경을 반영하지 못한 채 낡고 경직된 형태로 남아 있다. 또 기존 이해관계자들의 기득권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오히려 경쟁과 혁신을 저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공유 숙박 플랫폼이 대표적 사례다. 해외에서는 에어비앤비 같은 서비스가 여행 업계를 혁신하며 성장했지만 국내에서는 제한이 많았다. 집주인의 실거주 의무가 있고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하며 오피스텔은 불허하는 등의 규제가 있어 단기 국내 여행객을 위한 유연한 숙박 모델이 활성화되지 못했다. 기존 호텔 업계와 숙박업 종사자들을 보호하려는 목적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의 공유 숙박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장벽이 됐다. 결국 불법 운영이 난무하는 왜곡된 시장이 형성됐고 정부는 뒤늦게 규제 완화를 논의하게 됐다.
그러나 규제가 불합리하다고 이를 무시하고 혁신을 추진했을 때의 대가는 생각보다 클 수 있다. 만약 사고가 발생하면 이를 막기 위한 과격한 재발 방지책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고 결국 더 강한 규제로 이어진다. 한두 발짝 빨리 가려다 열 발짝 뒤로 물러나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페라리 같은 명품차 핸들을 잡게 되면 전속력으로 가속페달을 밟고도 싶고, 과감한 코너링으로 주목받고도 싶을 것이다. 하지만 교통 법규를 무시하고 질주한다면 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한순간의 질주는 짜릿할 수 있지만 만약 인명 사고가 나면 다시는 운전대를 잡지 못할 수도 있다. 택시 업계의 반발과 택시 기사의 분신 사태 등으로 당초 혁신 모델이 완전히 사라진 ‘타다’ 같은 서비스가 대표적 사례다. 혁신이 성공하려면 처음부터 규제와 공존할 수 있는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혁신가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지속 가능한 혁신을 하고 싶으면 규제와 친해져야 한다고. 규제를 장애물이 아니라 함께 조율해야 할 요소로 인식하라는 뜻이다. 규제 당국과 협력해 제도를 잘 설계한다면 혁신가가 더 큰 기회를 창출할 수도 있다. 성공적인 혁신은 사회적 합의와 함께 가야 하며 사회적 신뢰를 얻는 것이 혁신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함을 이해해야 한다.
규제 당국의 역할은 더욱 막중하다. 사회적 합의를 궁극적으로 도출해내야 하는 것은 입법가와 정부의 몫이지 혁신가가 풀어내야 할 숙제는 아니다. 시대 변화에 맞지 않는 규제, 기득권 보호에 치우친 규제가 혁신을 가로막음을 명심하고, 규제의 정당성을 끊임없이 검증하고 시대에 맞게 변화시켜야 한다.
혁신은 규제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공감을 얻는 과정이다. 규제를 이해하고 조율할 줄 아는 혁신가가 더 멀리, 더 빠르게 갈 수 있다. 마찬가지로 변화하는 시대에 맞게 규제를 개편하는 유연한 정부가 더 경쟁력 있는 국가를 만들 수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