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반도체 등에 대한 관세에 있어 불과 며칠 만에 180도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미 행정부는 이달 11일(현지 시간)에는 반도체 및 제조 장비, 스마트폰, 컴퓨터 등 전자제품에 대한 상호관세 예외를 발표했다가 13일에는 돌연 품목 관세에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반도체의 경우 무역확장법 232조에 의해 일단 최장 270일간 조사를 시행돼야 하는 만큼 ‘머지않은 미래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언에도 실제 부과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 품목 관세를 둘러싼 궁금증을 Q&A로 정리했다.
Q. ‘유연성’ 두 번이나 강조한 속내는
A. 트럼프 대통령은 13일 플로리다 마러라고 사저에서 워싱턴으로 이동하는 에어포스원에서 관세와 관련해 ‘유연성’이라는 단어를 두 번 언급했다. 아이폰과 태블릿PC에 대한 관세 질문에 “어느 정도 유연성을 보여야 한다. 누구도 그렇게 고집을 부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또 “곧 발표될 예정이고 논의도 할 것이다. 기업들과도 이야기를 나눠볼 것”이라며 기업인의 이야기를 듣겠다고도 했다. 이는 사실상 애플을 언급한 발언으로 읽힌다. 막무가내로 관세를 매길 경우 애플 등 미국 빅테크만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를 드러냈다는 해석이 나온다. 에버코어ISI에 따르면 애플은 중국에서 아이폰의 약 90%, 아이패드는 80%, 맥북은 55%를 생산하며 만약 중국에 대한 145%의 관세 폭탄이나 품목별 관세가 부과될 경우 삼성전자와의 가격경쟁에서 크게 밀릴 수 있다.
Q. ‘물가 상승’ 전망에 약한 모습 왜?
A. 물가 불안 역시 트럼프의 정책 행보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다. 반도체는 사실상 모든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품목인 만큼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 전자제품 가격의 도미노 인상이 불가피하다. 미 CBS 방송이 여론조사 기관 유고브와 이달 8~11일 미 성인 남녀 24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이날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5%가 트럼프 행정부의 새 관세정책이 단기간에 물가 상승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했다. 전임 조 바이든 정부가 ‘40년 만의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초래했다’고 비난해 당선됐던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내년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요동치는 물가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Q. AI 경쟁 격화 관세정책에 부담됐나
A. 중국의 ‘딥시크’ 출현으로 미중 인공지능(AI) 경쟁에 불이 붙은 가운데 AI 개발에 필수적인 반도체에 고율 관세를 매기는 것이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판단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미 워싱턴에 있는 싱크탱크 우드로윌슨센터는 “미국에 세계 유수 반도체 기업이 많이 있지만 해외 공급 업체에 반도체 생산을 많이 의존한다”며 “미국에서 생산되는 반도체는 11%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을 AI의 수도로 만들겠다고 공언했지만 그의 관세정책이 실리콘밸리의 기술 개발 노력을 훼손하고 중국과의 경쟁을 약화시킬 위협이 있다”고 꼬집었다.
Q. 국가 안보 위해 한발 양보했나
A. 반도체는 미국의 거의 모든 군사 장비에 쓰이는 만큼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핵심 부품이다. 협상용이 될 수 있는 상호관세와 달리 정교한 접근이 필수적이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심사숙고 끝에 도입하는 만큼 의사 결정 과정에서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 안보 문제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는 이날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과정에서도 엿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의약품 관련 언급을 하면서 “우리는 해외 기업에 관세를 부과해 미국에서 의약품을 생산하게 될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거나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중국이나 다른 나라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고 강조했다.
Q. ‘美 국채 던지기’ 부담 키웠나
A.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고율 관세로 미국 국채 시장을 중심으로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만큼 시장을 관리하려는 움직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4일 30년물 국채금리가 4.422%에서 8일 4.777%로 급등하며 금융위기 가능성까지 거론되자 9일 세계 각국에 대한 상호관세를 90일 유예했다. 최근 미 상원에 이어 하원도 향후 10년간 최대 5조 3000억 달러(약 7700조 원)를 감세하는 예산안을 통과시키면서 미국 재정적자 우려가 상승한 것도 국채 시장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달러인덱스는 14일 장중 99.3까지 떨어지며 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로이터통신은 “투자자들 사이에서 미국 자산을 소유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며 일부 투자자는 미국 자산을 매도하고 유럽을 포함한 다른 시장으로 자금을 이동시켰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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