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의 정책 기구인 ‘성장과통합’이 은행권 재원으로 상생기금을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은행의 과도한 이자 수익에 기여금을 물리는 횡재세와 법정 최고금리를 10%대로 낮추는 방안도 들여다본다. 이 가운데 횡재세 도입과 최고금리 인하는 기구 내부에서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사안 자체가 시장 원리를 깨뜨릴 정도의 파괴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금융권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금융계에 따르면 성장과통합은 이 같은 내용의 은행권 사회 공헌 및 서민 지원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성장과통합에 참여하고 있는 한 인사는 “정부가 은행에 독점 영업권을 허용해줬는데 여기서 대규모 지대가 발생한 만큼 서민들의 삶이 어려워졌을 때 은행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며 “횡재세는 내부적으로도 논란이 많아 공약에 최종적으로 담을지 봐야 하지만 지금까지 계속 당내에서 거론돼왔던 사안인 만큼 일단 논의 내용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상생기금의 경우 은행에서 조달한 자금을 바탕으로 서민과 소상공인을 위한 종합 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대출과 채무 조정, 컨설팅 등을 일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조성한 자금의 일부는 벤처 투자에 쓰거나 한계 중소기업에 투입해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서민 이자 부담 경감을 이유로 연 20%인 법정 최고금리를 10%대로 낮추는 방안도 살펴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금융권에 대한 통제를 더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민간기업인 은행은 이익을 창출하고 주주에게 이를 배분하는 게 중요하다”며 “금융 규제를 풀어 민간기업과 소상공인에게 자금이 흘러갈 수 있게 해야 한다. 상생기금과 횡재세는 섣부른 조치”라고 지적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당 대표 시절인 올 1월 시중은행장들과 만나 “어려운 때이기 때문에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 방안을 충실하게 잘 이행해달라”고 당부했다. 이 후보는 당시 “일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무엇을 강요해 뭘 얻거나 강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부연했지만 금융계 관계자들은 부담감이 상당히 컸다는 후문이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금융 등 4대 금융지주가 올해 17조 6000억 원을 웃도는 천문학적인 순이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되면서 야당의 상생 금융 요구가 한층 거세질 것이라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이 후보의 대선 경선을 위한 정책 기구인 ‘성장과통합’이 은행 상생기금 출자와 횡재세, 최고금리 인하 등 전반적인 금융 이슈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도 이의 연장선이다. 현재 성장과통합은 이 후보와 민주당이 지금까지 추진해왔던 정책 방안을 먼저 정리하고 이를 토대로 대선 공약을 수립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시장에서는 이 후보가 ‘잘사니즘’을 전면에 내세운 만큼 함께 잘살기 위한 금융권의 동참을 강조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후보가 강조하는 기본사회가 기본금융으로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후보는 2023년 11월 “국민 대다수가 고금리에 따른 고통을 겪고 있다”며 횡재세 부과 입법을 추진한 바 있다. 금융사의 연간 순이자수익이 지난 5년 평균의 120%를 초과할 경우 이 중 40% 이하를 상생 금융 기여금 명목으로 징수한 뒤 취약 계층과 소상공인 지원에 쓰겠다는 것이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민주당이 횡재세를 재추진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고 보면서도 횡재세에서 포장과 내용이 바뀐 형태의 상생 금융 방안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권 상생기금 출자가 거론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횡재세와 방식은 다르지만 은행권의 지원을 토대로 서민과 소상공인에게 저리 금융을 지원한다는 목적은 같기 때문이다. 민주당 내에서도 횡재세와 같은 정책과 관련해서는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민주당 내에서도 횡재세 부활은 쉽지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면서도 “다만 실질적으로 비슷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서민 지원 프로그램이나 방안을 준비하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최고금리 인하 방안도 마찬가지다. 성장과통합에 참여하고 있는 한 인사는 “법정 최고금리 인하 방안도 테이블에 올라가 있다”며 “금리 인하의 부작용에 대한 내부 반론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지만 서민을 도울 수 있는 방안을 한번씩 다 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과도한 상생 금융 요구가 금융시장 왜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오정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의 핵심은 생산성이 있는 분야에 자금을 빌려주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인데 상생 금융은 이와 전면적으로 반대된다”고 짚었다.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의 생각도 비슷하다. 그는 “상생 금융으로 이익 공유 압박이 커지면 은행 수익성이 나빠져 주주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법정 최고금리 인하도 불법 사금융과 취약 계층의 제도권 금융 이탈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고 해석했다.
실제로 약자를 지원한다는 목표 아래 취해지는 정책들이 되레 서민대출을 줄일 수 있다는 얘기가 많다. 정치권의 압력에 최고금리가 계속해서 내려가면서 2022년 말 현재 15조 9000억 원이던 대부 업계 전체의 대출 잔액은 지난해 6월 말 기준 12조 2000억 원으로 급감했다. 같은 기간 이용자 수도 98만 9000명에서 71만 4000명까지 감소했다. 금융계 관계자는 “최고금리가 20%인 지금도 대손비용을 생각하면 저신용자들에게 대출을 해줄 수가 없는 상황”이라며 “여기에서 최고금리를 더 낮추게 되면 민간에서의 서민대출 공급이 급격히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최고금리 인하는 불가한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