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국내 자산 운용사 보호를 명목으로 그동안 등한시했던 해외 운용사들의 국내 펀드 시장 진입을 다시 활성화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외국계 자산 운용사들을 대상으로 국내 투자중개업 인가 신청 접수를 곧 재개할 계획이다. 다만 국내 업계에서는 제도 실효성에 의문을 표하는 동시에 해외와 국내 금융 당국의 규제 강도 차이에서 비롯되는 차별 문제를 우려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20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최근 외국계 운용사들에 투자 중개업 자격 요건과 절차 등을 고지하며 사전 협의를 진행했다. 조만간 정식으로 외국 운용사들의 국내 투자중개업 인가 신청을 받는다는 계획이다.
외국 운용사가 공모·사모펀드를 국내에서 판매하려면 해당 외국펀드의 사전등록이 필요한데, 사전심사를 생략하고 사후 보고하는 미국, 홍콩 등에 비해 엄격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 때문에 국내 증권사들이 외국 운용사와 계약해 펀드를 들여와 팔아왔다.
당국은 역외펀드 유치로 국내 펀드 시장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투자자 선택권을 확대하겠다는 취지를 강조하고 있다. 이번 인가 재개를 계기로 대형 해외펀드 여럿이 국내에 들어올 것으로 기대된다. 그동안 금융 규제와 정책 불확실성에 외국계 금융투자 회사들은 국내 시장 진출을 외면해왔다. 업계 관계자는 “역외펀드는 일반적으로 10년 이상의 운용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규모도 크기 때문에 안정적인 포트폴리오 구축이 가능하다”며 “역외펀드 판매 활성화는 국내 투자자들의 수익률 제고에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제도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표하고 있다. 국내 증권사와 판매 위탁 계약을 체결하거나 재간접 펀드 설정, ‘리버스 인콰이어리’ 등 해외 운용사들이 국내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방법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 금융투자협회 차원에서도 최근 주요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들에게 해당 사안을 설명하며 대응책을 논의했다.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중개 수수료로 수익을 벌던 증권사들만 피해를 보는 꼴”이라고 토로했다.
리버스 인콰이어리란 국민연금 같은 기관 투자가가 투자를 위해 운용사에 먼저 투자 요청을 하는 행위를 뜻한다. 현재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리버스 인콰이어리는 면책 사유에 해당해 인가 없이도 외국 운용사들이 국내에서 펀드 판매 영업이 가능하다.
다만 리버스 인콰이어리의 경우 면책 사유가 애매하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국내 기관에 투자 자료 ‘설명’까지는 가능하나 ‘권유’를 심하게 할 경우 위법 행위에 해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설명과 권유를 판별할 기준 자체가 모호하다 보니 외국 운용사 입장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자본시장법 ‘중간지대(그레이존)’ 문제 해소는 물론 투자자 보호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운용 업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경쟁 심화와 더불어 국내외 규제 차이가 역차별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나라마다 다른 상품 규제 강도가 국내 펀드 시장에 왜곡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충분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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