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에서도 인기를 끈 챗GPT의 ‘지브리 화풍’ 이미지 변환 작업 이면에는 막대한 전력 소모라는 그늘이 있다. 카네기멜런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이미지 변환 기능을 사용하는 데 소모되는 전력은 건당 약 2.9Wh에 이른다. 이는 스마트폰을 30%가량 충전할 수 있는 전력이다. 단순 대화 생성(0.047Wh)이나 문장 요약(0.049wh)에 비하면 60배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렇다 보니 챗GPT의 전기 소비량은 급증하고 있다. 최근 이용자가 5억 명을 돌파한 챗GPT는 에어컨 5만 대를 1시간 동안 돌리는 에너지를 매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연간으로 환산하면 약 18TWh로 미국 미시시피주가 1년 내내 사용하는 주택용 전력과 맞먹는다. 이 같은 상황에서 에너지 고소비 작업이 사용자들 사이에서 유행이 되자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그래픽처리장치(GPU)가 녹아내리고 있다”며 이미지 변환 기능 사용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첨단기술은 특이점을 지나면 수요와 기술 수준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경향이 있지만 AI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수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전 세계가 AI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그 이면에서는 기술을 뒷받침할 전력 설비 확보전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AI 최강대국인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전날 “우리는 지금의 2배 또는 그 이상의 에너지가 필요하다”며 “비상 권한을 사용해 대형 공장과 AI 시설을 건설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실제 취임 당일 미국 내 에너지 생산 수송 등의 가속화를 위한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언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데 이어 며칠 뒤 최대 5000억 달러 규모의 AI 인프라 프로젝트 ‘스타게이트’를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양산업으로 평가받던 석탄화력발전소의 부활도 예고한 상태다.
이는 AI 컴퓨팅과 AI 데이터센터 등 필수 인프라 건설에 막대한 에너지 확보가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22일 “트럼프의 에너지 정책이 ‘드릴 베이비 드릴’로 알려져 있지만 속을 뜯어보면 데이터센터와 발전소·송변전망 등을 계속해서 건설하는 ‘빌드 베이비 빌드’로 바꿔 불러야 맞는다”고 설명했다.
AI와 에너지 간 얽히고설킨 관계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15~2024년 10년간 글로벌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는 연평균 10% 증가했다. 이는 2005~2014년 10년간 증가율(연평균 3%)의 3배를 넘는 속도다. IEA는 향후 10년간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량이 전체 전력 소비의 최소 10%를 웃돌 것으로 보고 있다. 2035년 한국의 전력 소비량은 목표 수요 기준 619TWh다. 여기에 10%인 61.9TWh 안팎을 데이터센터 몫으로 배정해야 10년 후 글로벌 스탠더드에 뒤처지지 않는 셈이다. 대선 후보들이 내놓는 △100조~200조 원 AI 투자 △5만 장 첨단 GPU 확보 △한국형 챗GPT 무료 제공 등의 AI 공약이 유명무실해지지 않으려면 그에 걸맞은 전력 공급 역시 가능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첨단 GPU와 데이터센터를 싼값에 안정적으로 돌리면서도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려면 중장기적으로는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와 원전 등 ‘에너지믹스’의 황금 비율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부는 2038년 에너지원별 발전 비중을 원전(35.2%), 재생에너지(29.2%), 액화천연가스(LNG·10.6%), 석탄(10.1%) 등으로 제시했다. 태양광에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 기상 조건에 따른 발전량 변동이 너무 커져 AI가 수시로 멈출 수 있다. 그렇다고 값싸고 안정적인 원전을 무작정 늘리자니 주민 수용성이 낮은 데다 입지 제약이 심해 맘먹은 대로 지을 수 없다.
전력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국가가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AI 데이터센터의 ‘환상의 짝꿍’이 될 소형모듈원전(SMR) 개발을 서두르고 LNG 발전을 ‘브리지 전원’으로 인정해 그 쓰임새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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