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미국발 자동차·철강 고율 관세의 직격탄과 상호관세 불확실성에 크게 흔들리고 있다. 22일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놓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는 기존 1월 2.0%에서 1.0%로 1.0%포인트나 급락했다. 이는 아시아태평양 국가를 포함한 주요국 가운데 멕시코(-1.7%포인트)를 제외하고 가장 큰 폭의 하향 조정이다.
IMF는 한국의 성장률 하향 원인에 대해 구체적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미국의 관세정책이 결정적 요인인 것으로 지목된다.
우선 미국 정부가 이달부터 수입산 자동차에 대해 고율 관세를 부과한 것이 예상을 뛰어넘는 하향 조정의 주요 원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한국에 적용하기로 한 상호관세(25%)를 90일간 유예하기로 했지만 철강·자동차(25%) 등 일부 품목별 관세 조치는 시행하고 있다. 사실상 0%에 가까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특혜 관세가 무력화되고 있어 올해 남은 기간 대미 자동차 수출 급감이 불가피하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미 자동차 수출 규모는 347억 4400만 달러(약 49조 원)로 전체 자동차 수출의 절반에 달한다. 한국의 전체 GDP와 대미 수출에서 자동차 등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점을 고려하면 전체 성장률 하락이 불가피한 셈이다.
여기에 미국이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하기는 했지만 리스크는 여전히 살아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상호관세에 대한 불확실성과 이에 따르는 한국 경제의 충격이 이번 성장률 하향에 선반영된 것이다. 실제 IMF는 미국에 대한 전망치를 0.9%포인트 내렸고 중국과 일본도 각각 0.6%포인트, 0.5%포인트 하향 조정했는데 한국은 1%포인트나 내렸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관세 충격이 가장 클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IMF는 해당 보고서에서 “세계경제의 리스크가 하방 요인에 집중돼 있다”면서 “무역 갈등 등 정책 불확실성 확대에 따른 소비·투자 위축이 위험 요인”이라고 밝혔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 경제는 대외 비중이 크고 내수가 취약해서 모든 국가가 관세 충격을 받는다고 해도 한국이 더 클 수밖에 없다”면서 “일본은 대외 영향이 있어도 나름 내수가 받쳐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무역기구(WTO)도 관세 여파에 따라 올해 세계 성장률을 마이너스 0.2%로 전망했으며 미중 간의 관세 갈등으로 전 세계 교역량이 1.8% 감소하는 등 글로벌 교역 위축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고 경고했다. 더 큰 문제는 세계 주요 경제 대국인 미중이 상호관세를 놓고 연일 관세율을 높이며 긴장감이 커지면서 대미·대중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대통령 탄핵 등 정치적 리더십 부재로 한국 정부의 정책적 대응 능력이 떨어지고 있는 데다 세수 기반도 취약해 신속한 재정 집행이 어려운 점도 경기 하방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
우 교수는 “경제위기가 오면 재정을 동원해서 완화 시키는 정책을 펼치는데 한국은 지난 3년 동안 세입 기반도 취약해져서 정부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우려했다.
IMF뿐만 아니라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IB)까지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잇따라 하향 조정하면서 한국의 성장률이 0%대로 추락할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온다. JP모건은 이달 기존 0.9%에서 일주일 만에 0.7%로 추가 하향했다. 미국 행정부가 한국에 25%의 상호관세를 부과하면 올해 남은 기간 수출과 제조업 분야 성장률이 정체될 수 있다고 분석했기 때문이다. 박석길 JP모건 이코노미스트는 “예상보다 큰 폭의 미국 관세 인상을 비롯해 국내 정책 환경과 대외 악재가 빠르게 전개됨에 따라 한국의 GDP 성장률과 정책 전망을 추가로 조정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경기 하방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재정 집행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17일 “12조 원 추경 시 0.1%포인트 정도 경제를 올리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재정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부는 이날 국회에 재해와 재난 대응 및 통상·인공지능(AI) 경쟁력 강화 등을 위한 12조 2000억 원 규모의 추경안을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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