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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장 아나운서 1호 '농구 할배' 염철호씨, 90세로 별세

2004년 12월 7일 농구대잔치에서 오랜만에 장내 아나운서를 맡았던 고(故) 염철호 씨. 연합뉴스




한국 프로농구(KBL) 장내 아나운서 1호 염철호 씨가 22일 오후 2시50분께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23일 전했다. 향년 90세.

1935년 1월 15일 함흥에서 태어나 월남한 고인은 서울사대부중에 다닐 때 외국인 선교사에게서 배운 농구를 평생의 업으로 삼았다. 성동고, 중앙대에서 선수로 뛰었고, 1950년대 말에는 청소년대표로 뽑힌 적도 있다. 이화여고에서 역사를 가르치다 1968년 농구부 창단 감독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서울은행(서울신탁은행 거쳐 현 하나은행), 전매청 농구부 창단 감독으로 활약했다. 신용보증기금 감독도 맡았다.

고인은 프로농구가 출범하기 전 ‘점보시리즈’라는 이름으로 농구대잔치가 시작됐을 때부터 한국 농구 최초의 장내 아나운서로 활동했다. 아들 염제인 씨에 따르면 고인은 농구대잔치가 출범할 당시 “입담 좋은 염철호 씨가 맡는 게 좋겠다”는 농구계의 추천으로 마이크를 잡게 됐다. 고인은 1997년 KBL 출범 이후에도 활동을 이어갔으며 1990년대 후반까지 안양 SBS, 창원 LG 등 구단의 홈 경기 장내 아나운서를 맡았고, 1999년 남북통일농구대회에서도 마이크를 잡은 바 있다.



경기 중 관중과 소통하며 진행하는 그의 방송 스타일은 당시로선 이례적이었다. ‘코트의 감초’로 불리며 시종 구수한 입담과 예리한 멘트로 호평을 받았다. 인기가 높아지며 사인을 받으려는 팬까지 생길 정도였다고 아들 염씨는 회상했다. 인기에다 기자들과의 친분까지 겹친 덕에 대한농구협회 홍보이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2008년까지 요청이 있으면 간간이 장내 아나운서로 등장했고, 제2의 고향인 대전에서 농구 꿈나무를 지도하기도 했다.

2008년 9월 부인이 세상을 떠난 데 이어 2009년 뇌경색을 일으킨 뒤로는 농구장에 돌아가지 못했다. 아들 염씨는 “대전에 살면서도 열차를 타고 서울로 매일 오갈 정도로 농구를 워낙 좋아하시는 분이셨다”며 “여러 별명 중에서도 ‘농구 할배’라는 말을 그렇게도 좋아하셨다”고 말했다. 호가 ‘우림’(友林)이었을 정도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고 술을 즐겼다.

고인의 빈소는 대전 건양대병원 장례식장 3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4일 오전 7시20분, 장지 대전추모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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