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은 9100만 대가 판매돼 전년 대비 1.8% 증가했다. 그러나 공급 차질의 기저 효과와 글로벌 경기 둔화, 전기차 수요 정체 등으로 성장세는 둔화했다. 팬데믹 이후 주요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은 미국 시장의 견조한 수요에 힘입어 중국 시장의 판매 부진을 버텨냈지만 2024년은 미국 수요 증가세마저 둔화돼 유럽의 회복도 지연됐다. 여기에 신흥 시장에서도 중국 브랜드가 약진하면서 중국계 브랜드를 제외한 대부분의 글로벌 메이커는 판매가 2023년 수준에 머물거나 감소했다.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은 지난해 전기차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중심의 판매 확대 등으로 매출은 증가했으나 수익성은 하락했다. 막대한 투자를 감행한 전기차 전환이 예상보다 느린 데다 중국발 전기차 가격 전쟁도 심화됐다. 어려운 경영 환경이 겹치자 경쟁력 유지를 위해 구조조정 등 일시적 비용이 늘어 폭스바겐그룹과 스텔란티스·포드 등 주요 기업의 영업이익은 감소했다.
특히 안정적 수요를 유지하던 미국마저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전면적인 관세전쟁으로 불확실성이 커졌다. 올해는 자동차 산업에 매우 어려운 한 해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설상가상으로 국내 자동차 시장마저 위축돼 안팎으로 힘든 복합위기에 직면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미래 모빌리티 주도권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국내 자동차 기업들은 중국 전기차의 부상과 대미 수출 여건 악화, 최근 10여 년 중 가장 부진한 내수 경기를 동시에 맞닥뜨렸다. 무엇보다 미래차 전환의 핵심인 전기차 경쟁력 확보는 기술력뿐 아니라 가격 경쟁력도 중요해진 상황이다. 전기차 업계 선두였던 테슬라도 지난해 매출액 1위를 비야디(BYD)에 넘겨줄 만큼 경쟁 환경은 녹록지 않다.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자동차 업계는 고율 관세 부과로 미국 시장 경쟁 여건이 악화됐다. 경기 둔화로 국내 자동차 내수도 살아나지 못하고 있어 뚜렷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실정이다. 수출도 거세지는 현지화 압력에 지난해 수준 유지조차 어려워 내수마저 무너진다면 국내 생산 기반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정부가 자동차 산업을 둘러싼 어려운 경영 환경을 인식하고 선제적으로 개별소비세 감면 및 노후차 폐차 시 추가 감면 등의 내수 활성화 정책을 시행한 것이다. 또 전기차 보조금 정책이 조기 확정돼 올 1분기 전기 승용차 판매가 30% 증가했다. 하지만 전기 화물차의 수요는 여전히 부진하고 전체 자동차 판매도 팬데믹 이전 수준에 못 미치고 있다. 내수 활성화 정책이 지속되지 않는다면 수요가 다시 얼어붙을 수 있어 정부의 지속적 관심과 적극적 대응이 절실하다.
2020년 코로나 위기 당시 자동차 산업은 정부의 적극적 내수 부양책에 힘입어 세계 10대 자동차 시장 중 유일하게 성장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수출은 급감했지만 내수가 버텨주면서 국내 자동차 산업 생태계를 지켜냈다.
정부가 이달 발표한 ‘자동차 생태계 강화를 위한 긴급 대응 대책’은 업계의 경영 애로 해소를 위한 시의적절한 대응으로 평가받고 있다. 노후차 교체 지원 지속, 전기차 보조금 확대, 충전요금 할인 특례 부활 및 고속도로 전용 차선 진입 허용 등이 함께 시행된다면 전기차 보급 확대와 내수 회복의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팬데믹 위기를 버텨냈던 것처럼 자동차 산업이 다시 한 번 내수의 힘으로 또 한 번 위기를 넘어설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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