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증시와 미국 국채, 달러가 동시 상승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과의 무역 갈등을 해소할 의지를 밝힌 데 따른 반응이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을 해임할 의사가 없다고 밝힌 점도 자산 시장을 밀어울렸다. 그럼에도 시장에서는 무역 갈등에 대한 리스크가 해소된 것이 아니라 다소 완화된 것일 뿐이란 분위기가 역력하다.
23일(현지 시간) 뉴욕 증시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419.59포인트(+1.07%) 상승한 3만9606.57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은 88.10포인트(+1.67%) 오른 5375.86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종합지수는 407.63포인트(+2.50%) 뛴 1만6708.05에 장을 마감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의 무역 갈등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독립성과 관련해 전날부터 시장의 불안을 달래는 발언을 한 점이 상승 요인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오후 백악관 집무실에서 대중 협상에 대해 “잘하고 있다”며 145%에 달하는 대중 추가 관세에 대해 “그 정도로 높게 있지는 않을 것이며, 매우 상당히 내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최근 자신이 금리 인하 요구 불응 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을 해임할 수 있다고 시사하는 발언을 한 것과 관련, “나는 그를 해고할 생각은 전혀 없다”라면서 “나는 그가 금리 인하 아이디어에 좀 더 적극적이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지난 주 파월 의장을 두고 “반드시 해임해야 한다”고 말한 뒤 백악관에서 “실제 법적 검토를 진행 중”이라고 했던 입장에서 물러났다.
기대감에 자산 시장 전반이 상승했다. 그동안 매도세가 컸던 미국 30년물 국채 금리는 이날 6.3bp(1bp=0.01%포인트) 떨어졌으며 10년물 금리는 1.6bp 하락했다. 국채 금리 하락은 가격 상승을 의미한다. 전날 한 때 98선이 무너졌던 달러지수는 이날 1.01% 오른 99.91로 100선 가까이 올랐다. 비트코인은 2.5% 올라 9만3767달러 대에 거래되고 있다.
달러와 미국 국채 상승에 안전 자산인 금은 매도세가 나타났다. 전날 온스당 3500달러를 넘기며 최고가를 갈아치웠던 금은 이날 한 때 3200달러 선 까지 떨어진 후 현재 3302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글로벌트 인베스트먼트의 포트폴리오 매니저인 키스 뷰캐넌은 “시장이 간절히 바라던 바이고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이 조금이라도 진정되기를 바란다”며 “최악의 상황은 지나갔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셀 아메리카’ 멈췄지만, ‘바이 아메리카’ 목소리는 없다
이날 나타난 자산 시장의 흐름은 미국 주식과 국채, 달러가 동시에 떨어지던 ‘셀 아메리카(Sell America)’ 기조의 정반대였다. 하지만 월가에서는 이날 자산시장의 흐름을 두고 누구도 ‘바이 아메리가’ 기조가 살아났다는 분석을 내놓지는 않았다.
실제로 이날 증시 상승 폭은 개장 당시 보다 줄어든 채 마감했다. 다우지수의 경우 개장 초 4만376까지 올랐지만 점점 하락하면서 4만 선을 지키지 못했다. 나스닥지수 역시 장 초반 상승폭이 4% 대를 넘기기도 했지만 결국 2.5% 상승에 만족했다. 국채 매수세 역시 장 후반으로 갈수록 줄어드는 모습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스콧 베선트 재무 장관이 이날 한 행사 후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중국에 일방적인 관세 인하 제안은 전혀 없었다”고 밝힌 데 따른 반응으로 풀이된다. 이는 중국과의 협상 의지와 별개로 실제로 미국이 협상을 개시하기 위한 양보 의사는 여전히 없다는 점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 역시 이날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에 대한 일방적 관세 인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베선트 장관이 이날 새로 내놓은 메시지도 겉보기엔 유화적이었지만 관세 정책에 대한 의지와 정당성은 여전하다는 점이 나타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불시에 백악관 북쪽 잔디밭을 나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중국과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있으며 공정한 거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더 이상 전세계 모든 국가가 벗겨 먹는(ripped off) 그런 나라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무역 수지 적자가 외국의 ‘약탈’로 인한 결과라는 기존 인식을 다시 한번 드러낸 발언으로, 세계 주요 무역 상대에 높은 관세를 매길수록 미국의 정의에 부합한다는 전제가 녹아있다. 베선트 장관 역시 이날 행사에서 “우리는 불공정한 무역 시스템으로 인해 규모가 크고 지속적인 미국의 적자라는 냉혹한 현실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레빗 대변인 역시 “중국의 관세 및 비금전적 관세 장벽이 반드시 완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연준 베이지북서 ‘관세’ 언급 107차례, ‘불확실성’ 89회
근본적인 경제 불안에 대한 징후도 계속되는 점도 투자자들이 안도할 수 없는 대목이다. 이날 연준이 공개한 4월 경기동향보고서(베이지북)은 “경제 활동은 이전 보고서 이후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국제 무역 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전반에 걸쳐 만연했다”고 진단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번 베이지북에서 관세에 대한 언급 횟수는 107차례에 이르러 직전 보고서(49회) 보다 2배 이상 많았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인 2018년 10월 베이지북에서 51회 언급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역 기업인들이 느끼는 관세 불안감이 이번 행정부에서 더욱 커졌다는 점을 시사한다. 아울러 ‘불확실성’과 관련된 표현도 89회 등장했다.
연준은 이번 보고서에서 미국 내 각지역에서 출장이나 휴가를 위한 방문객이 모두 둔화되고 있으며 외국인 여행객도 감소했다고 기술했다. 보고서는 “여러 지역에서 기업들이 고용에 대해 관망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으며, 경제 상황에 대한 명확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채용을 중단하거나 늦추고 있다고 보고했다”며 “또한 기업들이 해고를 준비하고 있다는 보고도 산발적으로 나왔다”고 밝혔다. 소비자 지출도 관세 전 수요가 몰린 자동차를 제외하고 전반적으로 낮아졌다고 연준은 전했다.
시타델의 설립자면서 월가의 헤지펀드 거물인 켄 그리핀은 이날 한 행사에서 관세 정책으로 인해 트럼프 임기 4년간 성장에 집중하려던 경영자들의 계획이 좌절됐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미국 브랜드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며 “(관세로 인해) 사람들이 미국에 제조업을 건설하기 위해 경쟁하는 일은 없을 것이고 오히려 정책의 변동성 때문에 실제로 달성하려는 목표 자체가 훼손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월가에서는 한동안 자산시장이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하는 변동성을 전망했다. 노스웨스턴 뮤추얼 웰스 매니지먼트의 브렌트 슈트는 “긴장이 얼마나 심한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인식의 차이일 뿐”이라며 “앞으로 몇 달 동안 무역 긴장이 고조되었다가 다시 완화되는 모습을 보이면서 실제 미래가 어떻게 될지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을 때까지 이런 현상이 더 자주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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