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대선을 앞두고 기업가치제고(밸류업) 프로그램이 지속되기 어렵다고 예상한 상장사들이 밸류업 공시에 소극적인 태도로 태세 전환했다. 반면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까지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은 끝내 시행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보고 대비에 나서는 등 정치적 변수에 따른 대응 전략을 마련하는 모양새다.
2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밸류업 공시(예고 포함)를 한 기업 수는 10개사로 제도 시행 초기였던 올해 1월(8개사)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이마저도 두 번째 밸류업 공시를 내놓은 KB금융·신한지주·에스트래픽을 제외하면 7곳이다. 올해 2월(16개사)과 3월(20개사) 대비 눈에 띄게 줄었을 뿐만 아니라 지난해 12월(39개사)과 비교하면 급감한 셈이다.
밸류업 공시 참여율이 하락한 것은 대선 등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기업들이 관망에 나선 영향으로 풀이된다.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일을 발표한 3월 31일 이후 10일간 밸류업 공시가 끊겼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이후 최장 기간 공백이다. 우수기업 표창 심사 대상이 3월까지고, 이달 내 공시해야 밸류업 지수에 편입될 수 있지만 개인 순매수 규모가 감소하며 관심도가 떨어지자 참여 유인도 줄었다. 밸류업 ETF의 개인 순매수 규모는 출시 첫 달인 지난해 11월 약 172억 원에서 이달 1~24일 약 17억 원으로 10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유력 대선 후보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가 21일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밸류업 정책을 지속해야 한다는 건의에 즉답하지 않고 밸류업이라는 단어조차 직접 언급하지 않자 더욱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자본시장 정책은 지속 추진하더라도 밸류업 자체는 명칭을 바꾸거나 다른 내용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지난해 말 금융위원회가 참여를 예고한 삼성전자가 아직 공시하지 않은 점도 다른 상장사들이 참여를 망설이는 요인이다. 상장사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밸류업이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데 굳이 부담을 안고 서둘러서 공시할 이유가 없다”고 털어놨다.
밸류업 불확실성이 확대된 것과 달리 상법 개정안 시행은 확실해졌다는 것이 주요 상장사들의 평가다. 대선 결과에 따라 더불어민주당이 집권하면 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상법 개정 재추진을 공식 언급하면서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등 한층 강화된 방안을 예고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미 상법 개정안 두 건을 발의하면서 속도전에 나섰다.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사 충실의무 대상을 ‘전체 주주’로 확대하면서 특정 주주의 이익을 우선해선 안 된다는 내용을 담았고 법안 공포 즉시 시행하는 등 강도를 한층 높였다. 같은 당 윤준병 의원도 총주주 이익을 보호하고 전체 주주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법안을 내놓았다. 여기엔 집중투표제를 배제할 수 없고, 전자주주총회 병행 개최를 의무화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김한진 라이트우드파트너스 대표는 “정치권은 소액주주 지지를 얻기 위해서라도 결국엔 상법을 개정할 것”이라며 “기업들은 걱정만 하기 보단 주가부양으로 이어질 방법을 찾거나 경영권 방어 장치를 마련하는 등 기회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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