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학년도 의과대학 정원을 심의할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추계위)가 시작부터 삐걱이는 모양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보건복지부가 추계위원 추천 요청 시한으로 제시한 10일의 기한을 넘긴 채 기한 연장 요구가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각을 세우고 있다. 교육부와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의대협)의 만남마저 무산되며 의대생들의 대규모 유급이 현실화할 가능성도 커졌다.
의협은 29일 입장문을 통해 “보건복지부의 여전한 의료농단과 의료계 갈라치기 행태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과학적 근거없이 일방적으로 강행된 의대증원 사태가 1년 넘게 지속됨에 따라 국민 모두가 피해자가 됐다"며 "대통령 탄핵이라는 국가적 혼란까지 야기했음에도 정부와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일말의 반성과 책임은 고사하고 의료개혁특위 지속, 필수의료정책패키지 및 의료개혁실행방안 등을 여전히 고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수급추계위 법안 역시 전문성, 독립성, 투명성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채 성급하게 통과된 측면이 있음에도 의료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는 대승적 차원에서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복지부는 공포된 법에 따라 추계위를 서둘러 구성한다는 명목으로 10일의 기한 내에 위원을 추천하라는 일방적인 공문을 발송했다"고 꼬집었다. 복지부가 추천 요청을 한 구체적인 단체와 위촉정원, 최종 선정기준 및 방법 등이 불확실해 이를 명확히 해달라는 공문을 보냈음에도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으며 의협을 무시하고 외면했다는 것이다.
앞서 복지부는 의협 외에도 대한병원협회(병협). 대한의학회,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등 의료계 단체와 소비자·환자단체, 보건의료 학회·연구기관 등에 공문을 보내 이달 18∼28일 수급추계위원회 위원 추천을 요청한 바 있다. 전날(28일)까지 병협과 소비자·환자단체 등은 추천을 마쳤으나 의협을 포함한 다른 의사단체들은 아직 추천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추계위는 보건의료인력에 대해 주기적으로 중장기 수급추계를 하고 그 결과를 심의하기 위한 복지부 장관 직속 독립 심의기구다. 의대 정원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여야 합의로 법을 개정해 도입됐다. 정부는 이르면 내달 추계위를 출범해 2027학년도 의대 정원을 논의한다는 계획이다. 보건의료기본법에 따르면 추계위는 총 15명으로 구성되며 공급자 단체가 추천하는 전문가가 과반, 즉 8명 이상이 돼야 한다. 공급자 단체는 구체적으로 '보건의료 공급자를 대표하는 단체로서 보건의료인력 직종별 단체 및 의료법 제52조에 따른 의료기관단체'로 명시돼 있다.
의협은 법에 규정된 '보건의료인력 직종별 단체'가 의사, 간호사, 한의사 등 각 직종을 대표하는 단체를 지칭하며 의사 인력의 경우 의협만 해당한다고 해석하면서 정부와 입장차를 나타냈다. 직종별 단체인 의협과 의료기관단체인 병협만이 위원 추천 자격을 가져야 하고, 그 중에서도 7명이 의협 몫인데 복지부가 의협 외 다른 단체들에게 위원 추천 공문을 보내면서 공급자를 대표하는 단체가 의협이라는 사실을 부정했다는 주장이다.
의협은 "추계위원회 법안이 통과되었다면 그다음 단계인 시행령 등 하위법령을 마련하고 세부 사항을 정한 이후 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며 "기본원칙도 없이 위원회 구성에만 급급하여 강행하는 것 자체만으로 복지부는 이미 정당성과 명분을 잃은 것"이라고 질타했다. 다만 의협이 기본적으로 추천을 거부하는 입장은 아닌 만큼, 의료계 안팎에서는 조만간 의협이 의료계 몫의 위원을 함께 추천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들은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쫒기듯이 서두르는 복지부 책임자의 저의까지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의료계를 분열시키기 위한 전형적이고 비겁한 수법"이라고 비꼬았다. 또 "비록 추계위 법안이 불완전하고 우려되는 부분이 있더라도 우리협회는 의료사태 종식과 국가 위기 해결을 위해 적극 협조할 것"이라며 "복지부의 위원 추천 시작 과정부터 투명성 논란이 제기되고, 최종 위촉 단계까지 의혹이 지속된다면 끝까지 문제점을 지적하며 바로잡아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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