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관세로 촉발한 무역 붕괴 시나리오의 출구를 찾는 것일까, 미국 경제는 이미 이와 상관없이 경기 침체의 경로에 들어선 것 일까. 트럼프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은 29일(현지 시간) 뉴욕 증시는 이 같은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면서 상승세를 이어갔다.
미국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경제 지표에도 불구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무역 협상이 진전을 보이고 있다는 신호에 투자자들은 매수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 장관이 여러 무역 상대국 가운데 한 곳과는 이미 거래를 끝마친 상태라고 발언하며 투자자 심리가 힘을 받았다.
29일(현지 시간)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300.03포인트(+0.75%) 오른 4만527.62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은 32.08포인트(+0.58%) 상승한 5560.83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종합지수는 95.18포인트(+0.55%) 오른 1만7461.32에 장을 마감했다.
S&P500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전 거래일(1월 17일)부터 현재까지 7.2% 하락했다. 패이낸셜타임스(FT)의 분석에 따르면 이같은 주가 하락은 1974년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취임했던 약 50년 전 이후 새 행정부 출범 후 가장 나쁜 100일간 실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단순 협상용일 것이라는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의 고강도 조치로 무역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분석 때문이다.
다만 최근 추세는 상승세다. 이날까지 S&P500은 6일 연속 상승했다. 이 기간 상승폭은 약 8%로 블룸버그통신은 2022년 3월 이후 가장 큰 6일 상승폭이라고 전했다. 이날 S&P500의 종가지수는 상호관세 발표일이었던 4월 2일의 5670.97보다 1.9% 낮은 수준으로 낙폭을 10% 이상 회복했다. 최근 들어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 정책의 속도조절에 나서고 고위 관계자가 앞다퉈 관세 정책의 진전 상황을 알리며 유화적인 메시지를 나선 점이 무역 붕괴 공포를 다소 누그러뜨린 것으로 풀이된다.
HSBC의 전략가 앨러스터 핀더와 드미트리 레스킨은 “긍정적인 측면으로는 트럼프 행정부가 변동성을 일으키긴 했지만, 이른바 ‘트럼프 풋(Trump Put)’이 점점 더 가시화되고 있고, 무역 긴장에 대한 출구 전략(off-ramps)과 무역 합의에 대한 논의가 최근 더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반면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도 더 커지고 있으며, 일부는 이미 가격에 반영되어 있지만, 우리는 이것이 상승 여력을 제한한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러트닉 장관 “이미 협상 마친 나라 있다”…무역 협상 진전 기대, 단 ‘중국 빼고’
이날 6일 연속 S&P500 상승을 이끈 원동력은 러트닉 장관의 발언이다. 러트닉 장관은 이날 CNBC와의 인터뷰에서 “핵심은 바로 거래가 완료된 나라가 있다는 점”이라며 “지금 그 나라 총리와 의회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러트닉 장관은 “그 나라가 어디인지는 곧 공개될 것이지만 지금은 말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미국 당국자들의 발언을 바탕으로 할 때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가장 타결에 가까운 국가는 인도로 꼽힌다. 앞서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은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관세 협상과 관련 “인도와 우리는 매우 근접해 있다”라면서 “기술적인 이야기지만, 그들은 높고 많은 관세가 있기 때문에 (비관세 장벽보다) 더 협상이 용이하다”라고 밝힌 바 있다.
월가 분석가들은 현재 투자자들이 더욱 주목하고 직접 반응하는 이슈는 무역정책이라고 설명했다. 베어드의 투자 전략가인 로스 메이필드는 “무역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나올 때까지는 다른 문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며 “투자자들이 무역 진전을 기다리는 동안 S&P500은 5100~5700 사이에서 거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작 중국과의 가시적인 협상 진전이 없는 점은 증시에 부담이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은 이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100일을 맞아 경제정책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다음 몇 주 동안 18개의 중요한 무역 관계를 맺을 것”이라며 “중국은 제쳐두고 17개는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 제조업체에 대한 관세 부담을 낮춰줄 것이란 계획을 공식화 한 점도 트럼프 행정부가 유화적 행보로 해석됐다. 이날 장 마감 후 트럼프 대통령은 미시간으로 이동하는 에어포스 원에서 부품관세와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중복 적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자동차 제조업체들의 주가는 일단 상승했다. 포드는 1.35% 올랐으며 스텔란티스는 2.46%, 테슬라는 2.15% 상승했다. 다만 제너럴 모터스(GM)는 0.7% 하락하며 일부 관세 완화가 자동차 시장의 혼란을 막을 수 없다는 인식을 나타냈다.
경기 침체도 동시 진행 중
트럼프 행정부의 노력과 달리 기업의 경영진들은 정치적 지지를 떠나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변화와 각종 규제 변화로 불안해하고 있다. 앞서 리더십나우프로젝트와 해리스폴이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는 민주당을 지지한다고 밝힌 임원의 90% 이상, 공화당 및 무소속이라고 밝힌 임원의 80% 이상이 우려를 표명했다. 이 설문에서 기업 경영진의 45%는 최근 행정 명령과 정책이 회사의 경쟁력을 저하시켰다고 답했다.
이날 경제 지표도 어두웠다. 컨퍼런스보드가 조사한 4월 소비자신뢰지수는 86으로 전월보다 7.9포인트 급감했다. 다우존스의 추정치 87.7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는 2020년 5월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컨퍼런스보드 소비자신뢰지수는 4월까지 5개월 연속 감소하면서 2008년 이후 최장 기간 하락세를 기록했다. 특히 앞으로 6개월 뒤 경제 상황에 대한 관측을 지수화한 ‘전망지수’는 54.4로 전월보다 12.5포인트 급락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이 남아있던 2011년 10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3월 미국의 상품 무역 적자도 1월에 이어 또다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3월 상품무역 속보치에 따르면 3월 미국의 상품 무역 적자는 전월 보다 9.6% 늘어난 1620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블룸버그가 집계한 시장 예상치 1450억 달러를 웃돈 수치다.
무역 적자 증가로 월스트리트의 여러 이코노미스트들은 1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점점 마이너스로 갈 것으로 보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1분기 연율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0.2%에서 -0.8%로 하향 조정했다. 기존 0.9% 증가를 보던 제프리스(Jefferies) 역시 1분기 GDP가 -0.2%로 돌아설 것으로 봤다. BNP파리바(BNP Paribas)는 전망치를 1%포인트 하향 조정해 -0.6%로 낮췄다. JP모건의 수석 미국 이코노미스트 마이클 캐펜도 1분기 GDP가 -1.5%로 위축될 것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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