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1분기에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경제 성적표를 받았다. 증시는 발표 직후 놀란 분위기가 역력했지만 이내 안정을 되찾았다. 관세 시행을 앞두고 수입이 급증한 것이었을 뿐 미국 경제를 떠받치는 소비자들의 지출과 기업 투자는 여전히 견조했기 때문이다. 이번 보고서가 상호관세가 발표되기 전 이야기기도 했다. 증시 투자자들은 개별 기업의 실적과 미중 관세 갈등이 언제 해소될 지에 더 큰 관심이 쏠리는 분위기다.
30일(현지 시간) 뉴욕 증시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141.74포인트(+0.35%) 오른 4만669.36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은 8.23포인트(+0.15%) 상승한 5569.06에 장을 마감했다. 반면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종합지수는 14.98포인트(-0.09%) 떨어진 1만7446.34를 기록했다.
이날 장 초반 S&P500은 1% 이상 밀리기도 했다. 미 상무부가 발표한 1분기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증감률(속보치)이 전분기 대비 연율 -0.3%로 집계되면서다. 미국 경제가 분기 기준으로 역성장한 것은 지난 2022년 1분기(-1.0%) 이후 3년 만으로 지난해 4분기 성장률 2.4%에서 경제가 급격히 위축됐다.
무역 적자가 커진 것이 GDP 감소에 주된 원인이다. 1분기 중 수출이 1.8% 증가한 반면 수입은 41.3%나 급증하면서 순수출이 줄었다. 특히 상품 수입이 50.9% 늘었다. 기업들이 관세 시행 전 재고 확보를 위해 수입을 크게 늘린 것이 성장률 하락의 주된 배경으로 작용했다.
시장은 이같은 수치가 나온 직후 미국 경제의 둔화 가능성을 우려했지만 이후 주요 지수는 회복세를 보였고 결국 다우존스와 S&P500은 상승마감했다. 시간이 흐를 수록 보고서에 담긴 미국 경제의 기초 체력을 재평가하면서다.
통상 전문가들은 GDP에서 미국 경제 수요의 기조적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전체 수치 가운데 △무역 △정부 지출 △재고 투자를 제외하고 기업과 개인 소비자들의 지출 만을 별도로 살핀다. 미국 경제를 떠받치는 민간 수요를 보면 경제의 큰 흐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1분기 GDP에서 이같은 ‘민간 지출’ 혹은 ‘국내 민간 구매자에 대한 최종 판매’는 연율 3.0% 증가해 지난해 4분기(2.9%) 보다 오히려 상승폭이 커졌다. 웰스파고의 이코노미스트 섀넌 그레인은 “표면적인 하락세는 상당 부분 관세로 인한 경기 후퇴였기 때문에 약세를 과장하고 있다”며 “전반적으로 수요 측면에서는 비교적 견조한 기저 보고서였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살아나는 연준 금리 인하 기대감…7월까지 2차례 인하확률 60% 육박
투자자들은 이날 GDP를 세 가지 측면에서 최악의 상황이 아니라고 봤다. 하나는 적어도 1분기까지는 미국 경제를 떠받치는 민간의 수요는 호조를 보였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경제가 둔화될수록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 강도도 낮아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나머지 하나는 전체 GDP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서면서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가능성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기준 금리 인하는 증시, 특히 기술 기업들의 주가에 유리한 요소다.
이날 물가와 고용 관련 지표도 연준의 기준 금리 인하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나타났다. 우선 3월 물가 오름세가 둔화됐다. 이날 상무부가 발표한 3월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는 전년 대비 2.3% 상승해 지난 2월(2.7%) 보다 상승률이 둔화됐다. 지난해 9월(2.1%) 이후 6개월 만에 가장 낮은 오름폭이다. 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한 근원 PCE 가격지수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2.6%로 2021년 3월(2.2%) 이후 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고용 시장도 냉각 기류가 감지된다. 고용정보업체 오토매틱데이터프로세싱(ADP)은 4월 미국의 민간기업 고용이 전월 대비 6만2000명 증가해 지난 3월(14만7000명) 대비 증가 폭이 크게 줄었다.
물가 상승세와 고용, GDP 성장률이 동시에 둔화하면서 미국 선물시장에서 7월까지 금리가 2차례 인하할 확률은 전날 52.7%에서 현재 58.1%로 올랐다.
시티 인덱스 앤 포렉스닷컴의 파와드 라자크자다는 “부진한 경제지표가 연준의 금리 인하를 앞당길 수 있다”며 “연준이 이제 둔화하는 경제를 지원하기 위해 금리 인하를 더 빨리 시행할 가능성이 높아졌고, 경제지표 부진은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완화하고 협상을 더 빨리 타결하도록 부추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근본적인 미국 경제의 불확실성은 결국 미중 무역 긴장이 언제부터 얼마나 완화할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란 전망이 대체적이다. 이미 고강도 관세로 중국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컨테이너선이 급감하고 있기 때문에 상황이 장기화할 수록 미국 경제의 공급 충격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벨리어 앤 어소시에이츠의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연준이 곧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높고 무역 협정 타결 소식, 특히 중국과의 벼랑 끝 대치가 해결된다면 낙관론이 커질 것"이라면서도 “지금과 같은 무역 불확실 상황이 몇 주, 몇 달 동안 지속된다면 공급망 손상과 불가피한 단기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주식 시장이 매우 약세를 보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MS· 메타, ‘어닝 비트’, 머스크 백악관에 ‘작별 인사’
이날 실적 발표가 예정된 기업 중 가장 큰 관심을 모았던 마이크로소프트(MS)와 메타플랫폼은 예상치를 넘기며 '어닝 비트'를 기록했다.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플랫폼은 이날 장 종료 후 발 표한 지난 분기 실적발표에서 매출 423억1000만 달러에 6.43달러의 주당 순이익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매출은 시장조사업체 LSEG의 집계 전망치 414억달러보다 2% 이상 높고, 주당 순이익은 예상치 5.28달러를 약 20% 상회하는 수준이다. 이날 정규장에서 0.98% 하락했던 메타의 주가는 시간 외 거래에서 5%대 상승 거래 중이다.
MS 역시 마감 후 실적 발표에서 전 분기 700억7000만 달러의 매출과 3.46달러의 주당 순이익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월가 분석가 평균 예상치인 매출 684억2000만 달러, 주당 순이익 3.22달러를 각각 상회했다. MS의 주가는 정규장에 0.31% 오른데 이어 시간 외 거래에서 5.51% 상승 거래되고 있다.
AI서버 제조업체인 슈퍼마이크로컴퓨터는 지난 분기 매출이 전망치에 미치지 못하고 실적 전망을 하향 조정하면서 주가가 11.5% 하락했다. 테슬라는 일론 머스크 CEO가 이날 백악관에서 행정부 활동에서 물러난다고 공식 선언했지만 주가는 3.38% 하락했다. 머스크CEO는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훌륭한 내각과 함께 일하게 되어 영광이었다”고 작별 인사를 했다.
스타벅스도 예상치를 밑도는 88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면서 주가가 5.7% 하락했다.
/뉴욕=김흥록 특파원 ro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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