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034730)그룹이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부회장) 주도로 재작년부터 주요 계열사를 합병하고 비핵심 자산을 매각하는 리밸런싱을 단행했다. 그 결과 지난해 연결 대상 계열사 수가 감소하고 순차입금이 줄어드는 등 일부 성과가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정유·화학 업계 불황과 배터리 부문에서 대규모 적자가 누적된 SK이노베이션(096770)의 위기는 여전하다.
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SK그룹 리밸런싱 성공의 관건으로 SK온의 빠른 턴어라운드가 꼽힌다. SK㈜의 지난해 말 연결 기준 계열사 수는 649개로 1년 사이 67개 감소했다. SK㈜의 계열사 수는 2020년 325개, 2021년 454개, 2022년 572개, 2023년 716개 등 수년간 문어발처럼 급증하는 패턴을 보였으나 지난해부터는 이런 추세가 일단락됐다. 그룹 전체의 순차입금도 2021년 45조 320억 원, 2022년 60조 2836억 원, 2023년 70조 881억 원에서 지난해 66조 1316억 원으로 줄었다.
실제 SK그룹은 지난해 SK렌터카 지분 100%를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에 8200억 원을 받고 매각했으며 SK엔펄스의 파인세라믹스 지분 100%도 한앤컴퍼니에 3600억 원에 팔았다. 또 SK이노베이션은 SK E&S를, SK온은 SK엔텀과 SK트레이딩을 각각 흡수합병하며 덩치를 키우고 재무구조를 개선했다.
추가 리밸런싱 작업은 올해도 진행형이다. SK스페셜티 지분 85%(2조 6000억 원), SK엔펄스 CMP패드 사업부 지분 100%(3346억 원)를 모두 한앤컴퍼니가 인수했다. 기업가치가 4조 원대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SK실트론 경영권 매각 협상도 사모펀드(PEF) 운용사들과 진행 중이다. 이 밖에 SK에코플랜트의 폐기물 자회사 두 곳(리뉴어스·리뉴원)의 경영권 매각도 추진되고 있다.
최태원 그룹 회장을 대신해 리밸런싱을 이끄는 최 부회장에 대해서는 그룹 전반에 경각심과 재무적 효율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덕분에 SK그룹은 알짜사업을 선제적으로 매각하며 유동성 위기를 겪은 다른 그룹보다 빠른 시간 안에 현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과거 투자 당시 실질적인 결정권자가 아니었던 임직원들이 대거 물러났고 그룹의 핵심 사업으로 추진 중이지만 아직 성과가 더딘 일부 사업에 대해 손대지 않는 점은 한계라는 평가도 뒤따른다. 업계 관계자는 “SK그룹 등 최근 사업 재편을 벌이는 많은 그룹들이 신사업을 살리기 위해 그룹의 모태이자 현금 여력이 높은 사업을 파는 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처럼 활발한 포트폴리오 리밸런싱 작업에도 최근 SK그룹 안팎에서는 핵심 계열사 SK이노베이션에 대한 위기감이 그 어느 때보다 짙게 묻어나온다. SK이노베이션을 비롯한 국내 정유사들은 유가 하락과 정제 마진 악화, 고환율이라는 복합 위기 상황에 직면한 상태다. 특히 수십조 원을 쏟아부은 배터리 사업이 언제 흑자 전환을 이룰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산업 당국 등 정부 일각에서도 SK그룹의 리밸런싱 결과를 주목하면서 최악의 시나리오를 배제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SK그룹 리밸런싱의 목표는 결국 SK온에 대한 추가 증자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서 “그룹의 모든 역량을 SK이노베이션과 100% 자회사인 SK온에 투입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SK이노베이션은 자체 현금 창출력 강화를 위해 SK E&S와 합병하며 2024년 4분기 반짝 흑자를 이뤘으나 올 1분기 다시 영업손실 446억 원을 내며 적자 전환했다. 에프앤가이드가 추정한 SK이노베이션의 2분기 영업손실액 역시 320억 원으로 2분기 연속 적자도 예상된다. 금융 업계의 한 관계자는 “2차전지 업계는 이미 덩치가 작은 하도급 업체부터 부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면서 “업황이 개선되지 않은 채 2~3년 지나면 위기가 대기업까지 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부문 실적 턴어라운드가 결국 리밸런싱의 마지막 관문을 열 핵심 열쇠가 될 것이라는 공통된 분석을 내리고 있다. 회사 측은 올해 연간 흑자 전환을 자신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SK온에 대한 주요 자본 지출이 올해 마무리되더라도 공장 시설을 유지하기 위한 고정비용이 꾸준히 발생해 재무 상태를 짓누를 가능성이 높다. 전기차 시장의 극적인 반등 없이는 재무구조가 단번에 개선되기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 좀처럼 풀리지 않는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역시 큰 부담이다.
장수명 한국신용평가 수석애널리스트는 “SK온의 대규모 투자에도 불구하고 부진한 영업 실적이 지속되고 있다”며 “완성차 업체의 배터리 부품 조달 전략, 각국 정부의 정책 변화, 배터리 업체 간 경쟁, 수요 등락에 따른 사업 및 재무적 변동성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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