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스마트폰에 대해 25% 이상의 관세를 조만간 적용하겠다고 시사하면서 애플뿐 아니라 삼성전자에도 비상이 켜졌다. 글로벌 생산 기지 간 물량 배분 등을 통해 관세 리스크에 대응하려던 삼성전자는 또 한번 미국 내 생산을 압박받는 상황에 처해 투자 전략을 놓고 셈법이 복잡해졌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스마트폰 부품 업체들도 관세 리스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3일(현지 시간) 트루스소셜에 “아이폰이 해외에서 생산될 경우 애플은 최소 25% 관세를 납부해야 한다”고 적시했는데 뒤이어 삼성전자에도 불똥이 튀었다. 백악관은 “애플에만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삼성과 그 제품을 만드는 모든 기업도 마찬가지”라고 답했다.
미국에 수출되는 삼성 스마트폰에는 기본 관세율인 10%가 부과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지난달 초 국가별 상호관세율을 발표했지만 이후 적용을 유예해 기본 관세만 적용되고 있다. 삼성전자의 글로벌 스마트폰 생산지인 베트남과 인도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높은 상호관세율이 매겨진 상태다. 특히 삼성전자 스마트폰 생산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베트남은 46%의 초고율 관세가 부과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공언처럼 6월 말께 스마트폰에 최소 25% 관세가 현실화하면 미국 내 소비자 가격 상승도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그간 국가별 관세율과 미국 정책동향에 맞춰 전 세계에 흩어진 생산 기지를 이용한 생산량 분배 등을 통해 미국 관세정책에 대처해왔다. 삼성전자는 올 1분기 갤럭시 A16 등 일부 모델의 인도 생산을 늘린 것으로 전해졌다. 시장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1분기 미국 스마트폰 출하량의 제조국별 비중에서 인도가 26%로 지난해(16%) 대비 10%포인트나 늘었다. 반면 중국(56%→52%)과 베트남(27%→21%)은 줄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 기업 애플까지 거론하며 다시 한번 미국 생산을 압박해 생산 전략을 둘러싼 삼성전자의 고민은 깊어지게 됐다. 미국은 삼성전자 스마트폰 중 고가 모델의 주요 판매 지역으로 꼽힌다. 하지만 미국의 공장 건설 비용이나 임금이 타 지역 대비 월등히 높아 스마트폰 공장을 짓기는 쉽지 않은 실정이다. 가전의 경우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공장이 있지만 스마트폰은 미 현지에 생산 시설이나 유휴 부지 등이 전무한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30일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삼성이 관세 때문에 미국에 대규모 시설을 건설할 계획”이라고 밝히자 대응을 놓고 골머리를 앓은 바 있다. 업계에서는 박순철 삼성전자 최고재무책임자(CFO)가 1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가전·TV 제품의 경우 프리미엄 제품 확대가 필요하면 글로벌 제조 거점을 활용한 생산지 이전을 추진해 관세 영향을 최소화하겠다”고 말한 것을 백악관이 자의적으로 해석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었다. 다만 백악관이 한 달도 안 돼 삼성 측의 미국 생산 거점 투자를 또 압박하자 부담은 커지고 있다.
한 업계 고위 관계자는 “미국 내 인플레이션으로 공장 건설과 인건비 등 생산 비용이 이전보다 엄청나게 증가했다”면서 “관세를 부담하더라도 미국에 공장을 짓기는 쉽지 않지만 새 정부 출범과 맞물려 확 달라진 정책 환경에 삼성이 어떤 결단을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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