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금융권 가계대출이 6조 원 넘게 늘어나면서 7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와 대통령 선거 이후 부동산 가격 회복 기대감, 대출 규제 강화 전 막차 수요가 한 번에 겹쳤기 때문인데 금융 당국은 대출 증가 흐름이 지속할 경우 수도권을 중심으로 추가 규제 카드를 꺼낼 계획이다. ★본지 5월 26일자 9면 참조
1일 금융계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현재 전체 금융권의 가계대출 잔액은 전월 말 대비 6조 원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통상 월말에 주택담보대출 실행이 몰리는 점을 고려하면 최종 증가액은 6조 원을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0월(6조 5000억 원) 이후 가장 큰 규모다.
구체적으로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달 29일 기준 가계대출 잔액이 747조 2956억 원으로 한 달 새 4조 2108억 원이나 불어났다. 주담대 잔액만 3조 1527억 원 증가했다.
신용대출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5대 은행의 지난달 29일 현재 신용대출 잔액은 103조 5746억 원으로 4월 말 102조 4931억 원 대비 1조 815억 원 증가했다. 월간 기준으로 2021년 7월(1조 8637억 원 증가) 이후 3년 10개월 만에 가장 많이 늘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주식이나 가상자산 시장도 호조를 보이며 신용대출을 통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는 차주들도 있다”며 “당분간 대출 수요가 많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올 1월만 해도 전월 대비 9000억 원 감소했던 가계대출은 2월 4조 2000억 원 늘어나며 증가세로 돌아섰다. 이후 3월에는 4000억 원가량 늘어나며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다 토지거래허가제 해제 영향 등으로 4월 들어 5조 3000억 원으로 증가 폭이 다시 커졌다.
업계에서는 당분간 가계대출 증가세가 꺾이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위원회가 다음 달부터 대출 한도를 줄이는 3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적용하지만 실질적인 규제 강화의 효과는 8~9월부터 반영되기 때문이다. 되레 DSR 강화 전 대출 수요가 몰리면서 집값을 자극할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달 말 한은이 금리를 0.25%포인트 내린 것도 변수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가계대출이 증가하면 시간차를 두고 집값이 반드시 올라가게 돼 있다”며 “대선 이후 부동산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기대감이 확산하면서 가계대출 수요가 증가하는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가계대출이 다시 꿈틀대면서 금융 당국도 긴장하고 있다. 당국은 내부적으로 월별 대출 증가 폭이 6조~7조 원 이상이 되면 과도한 수준이라고 본다.
금융위 안팎에서는 1차로 수도권과 지방을 구분해서 대응하되 수도권에는 핀셋 규제를 시행하는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현재 집값이 오르는 지역이 수도권 일부 지역이고 타 지역은 여전히 부동산 경기 침체가 심각하다. 금융 당국의 한 관계자는 “수도권과 지방의 부동산 양극화가 심각하고 건설 경기를 함께 봐야 한다”며 “수도권 수요 대책은 지방과 구분해서 접근해야 할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당국은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해 전세대출 보증 비율을 수도권만 낮추거나 은행의 주담대 위험 가중치를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전세대출 보증 비율은 90%로 일원화돼 있는데 수도권만 이를 70~80%로 조정하는 것이다. 주담대 위험 가중치 상향도 대출 축소 효과가 있는 만큼 적극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신규 취급 주담대의 위험 가중치 하한인 15%를 상향 조정하는 식이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주담대는 안정적인 대출이어서 위험 가중치를 낮게 적용한다”며 “이를 상향 조정하게 되면 은행들은 자본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가계대출을 줄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