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관문’으로 불리는 싱가포르 창이공항이 최근 해외 면세점 사업자에게 임대료를 낮춰주는 조건으로 재계약을 맺은 것으로 확인됐다. 홍콩국제공항도 입점 업체들의 임대료 인하 요구에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놓는 등, 주요 아시아 허브공항들이 면세사업 활성화를 위한 유인책을 꺼내들고 있다.
반면 국내 최대 관문인 인천국제공항은 여전히 면세점 임대료 인하 요구에 선을 긋고 있어 갈등이 이어지는 모양새다. 2일에는 신라면세점과 신세계(004170)면세점이 인천국제공항공사를 상대로 제기한 임대료 조정 신청에 대한 법원 심리가 예정돼 있어, 업계 이목이 집중된다.
1일 유통·면세업계에 따르면, 창이공항은 최근 임대계약이 만료된 해외 면세점 운영사들과의 재계약 과정에서 임대료를 인하했다. ‘세계 최고 공항’으로 수차례 선정된 창이공항은 까다로운 운영 정책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입점 매장에 자사 포스(POS) 사용을 요구할 정도로 관리 기준이 엄격하지만, 면세 매출 회복을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홍콩국제공항 역시 매출 부진을 겪는 면세업체들에 대해, 임대료 인하 요청이 있을 경우 수용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인천국제공항은 이 같은 흐름과는 온도 차를 보이고 있다. 신라·신세계면세점은 인천공항 제1·2여객터미널에 입점한 화장품·향수·주류·담배 매장에 대해, 현재보다 40% 낮은 수준으로 임대료를 조정해 달라는 내용의 신청서를 인천지방법원에 제출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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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진행된 공항 면세점 입찰 당시 고정 임대료 체계에서 여객 수 연동 방식으로 과금 구조가 바뀌었지만, 정작 면세점 매출은 코로나19 이후 변화한 소비 패턴으로 반등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여객 수 산정 방식에 실질 소비 여력이 없는 미성년자까지 포함되면서, 면세사업자들이 체감하는 임대료 부담은 더욱 크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인천공항공사 측은 임대료 조정에는 여전히 부정적이다. 공사 관계자는 “기존 입장에서 변화는 없다”며 “시장 상황을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산하 공기업인 인천공항공사는 정부가 전액 출자한 기관으로, 자체 판단만으로는 임대료 인하를 결정할 수 없는 한계도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조정 기일 당일 공사 측이 거부 의사를 밝힐 경우 조정은 불성립으로 종료되고, 이후 정식 민사소송으로 전환된다.
설령 임대료가 인하되더라도, 형평성 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2023년 입찰에 함께 참여했던 현대면세점 등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입찰 전략으로 현재 수익을 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당시 고가 임대료를 써낸 신라·신세계에 대해 인하 혜택이 주어질 경우, 형평성 문제와 함께 입찰 탈락 업체들의 반발도 예상된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갈등이 내년 대선을 전후해 새 정부의 정책 기조와 맞물리며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다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한 면세업계 관계자는 “조정 신청 시점이 정치 일정과 맞물린 건 무관하지 않다”며 “차기 정부를 상대로 면세 업계의 정책 로비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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